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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 씨와 안산의 관우물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7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관우물이라고 아십니까? 관이 있던 곳의 우물이란 얘기이지요. 관이 있던 곳의 우물이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 지금부터 그 이상한 얘기를 풀어드리겠습니다. 안산시 목내동에 가면 일진전기라는 회사가 있는데, 바로 그 회사 정문 오른쪽 울타리 안에 관우물 표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바다에서 떠내려 온 관이 이 자리에 도착하였는데, 그 후 바닷가는 육지 안쪽이 되고 이곳에서 우물이 생겼답니다. 그래서 이곳이 관이 닿았던 자리라고 하여 관우물이라고 불렀다는군요. 

 

   
▲ 안산시 목내동 일진전기 정문 오른쪽 울타리 안에 있는 관우물 표석

 후후! 이렇게 말하면 성급한 사람은 이것도 설명이라고 하느냐며 화를 내실 것 같군요. 그 관은 문종의 아내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 씨의 관입니다. 현덕왕후가 아직 세자비 시절 단종을 낳았는데, - 그러니까 문종이 임금이 된 뒤에 현덕왕후로 추봉된 것이네요. - 그만 안타깝게도 단종을 낳고 3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하여 현덕왕후의 무덤을 일진전기 바로 뒤에 보이는 동산에 쓴 것이지요. 이곳을 능안리라고 부르는데, 현덕왕후의 무덤 소릉(昭陵)이 있던 곳이기에 능안리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나저나 조선 시대 왕가의 무덤을 바닷가에 쓰는 것은 별로 못 보았는데, 아들 낳다 죽은 한을 바다를 바라보면서 씻으라고 한 것인가? 

아무튼 그 뒤 세조가 쿠데타를 일으켜 단종을 영월로 유배했다가 결국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세조가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하더라도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으니, 마음 한쪽으로는 죄스런 마음으로 찜찜하였겠지요. 그런 세조의 꿈속에 현덕왕후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세조의 꿈에 나타난 현덕왕후가 개인적 은원(恩怨)을 접고 세조에게 조선을 잘 이끌어달라고 당부했겠습니까? 

결국 세조는 꿈속에서 현덕왕후의 엄한 질책과 저주에 시달리다가 피부병까지 생겼다고 하지요. 뿐만 아니라 큰아들 의경세자도 세조 3년에 20살의 나이로 일찍 죽습니다. 그러니 세조는 의경세자의 죽음도 현덕왕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무덤을 파헤쳐 관을 바다에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조가 잔혹한 임금이라고 하더라도 관을 바다에 버리라고 했겠습니까만은, 야사로 전해오는 것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천심과 민심은 현덕왕후에게 있었는지, 바다를 떠돌던 관은 관우물 자리로 떠내려 왔고, 이를 본 한 백성이 몰래 관을 묻었습니다. 그 뒤 중종 때 단종은 복위되지 않습니까? 단종이 복위되니 당연히 현덕왕후도 복위되겠지요. 그리하여 임금의 명으로 현덕왕후의 관을 찾게 되는데, 야사에 의하면 명령을 받은 관리의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관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답니다. 

 

   
▲ 현덕왕후의 무덤이 있엇다는 일진전기 뒤로 보이는 동산

 이후 현덕왕후는 정중한 상례 절차를 거쳐 동구릉에서 영면하고 있는 지아비 문종의 옆에서 비로소 영원한 안식을 찾습니다. 이후 관이 떠난 이 자리에서 우물이 솟아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곳에 관우물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제가 차에서 내려 경비원에게 관우물을 찾으니, 경비원은 의아한 눈으로 왜 그러냐고 묻습니다. 아마 관우물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관우물 표석을 사진에 담은 뒤, 이번에는 현덕왕후의 무덤이 있던 공장 뒤쪽의 동산을 찍으려고 슬기전화(스마트폰)를 드니, 왜 공장 사진을 찍느냐며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습니다. 하하! 혹시 나를 산업스파이로 오해한 건가? 관우물이 있는 곳은 안산시 공업단지 안입니다. 그리고 관우물 표석은 일진전기 울타리 안에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무심코 지나칩니다.​ 

시간이 없어 현덕왕후 무덤이 있던 동산에는 올라가지 않았지만, 그곳에도 특별한 안내문은 없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도 안산시가 스토리텔링으로 잘만 포장하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일 수 있을 텐데, 아쉽군요. 저는 마지막으로 현덕왕후가 몸을 누였던 동산을 한 번 더 쳐다보고 차에 오릅니다. “왕후여! 핏덩이를 낳고 3일 만에 눈을 감아야 했던 현덕왕후여! 그러함에도 또 저 하늘에서 당신의 아들(단종)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내려다봐야 했던 왕후여! 내 이제는 동구릉으로 당신을 만나러 가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