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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명재상 맹사성과 검은 소의 우정, 흑기총(黑麒塚)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7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경기도 광주시 곧은골[直洞] 영장산 자락에 가면 조선 전기의 청백리 재상 맹사성의 무덤이 있습니다. 여기서 곧은골 고개를 넘어가면 분당 율동공원이 나오지요. 그런데 맹사성의 무덤 근처에는 웬 검은 소의 무덤[黑麒塚]이 있습니다. 왜 조선의 명재상 무덤 옆에 검은 소의 무덤이 있을까요? 지금부터 그 비밀의 무덤을 파헤쳐보기로 하지요. 

 

   
▲ 경기도 광주시 곧은골[直洞] 영장산 자락에 있는 조선 전기의 청백리 재상 맹사성의 무덤

 하루는 맹사성이 온양의 본가 뒤에 있는 설화산 자락에서 산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따라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닙니까? 맹사성이 ‘뭔가?’ 하여 소리 나는 곳으로 가보는데, 거기에선 동네 아이들이 검은 소 한 마리를 놓고 장난을 치며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아이들로서는 평소에 보기 드문 검은 소가 보이니까 호기심에 모여들었을 것이고, 그러다가 한 놈이 장난삼아 돌을 던지자 나머지 놈들도 따라서 돌을 던지며 검은 소를 놀려댄 것이겠지요. 그런데 검은 소는 아직 어려서 많은 아이들이 둘러서서 괴롭히니 어쩔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합니다. 

 

   
▲ 맹사성 무덤 옆에 있는 검은 소 무덤

 누구에게나 어질게 대하던 맹사성이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맹사성은 당장 달려가 아이들을 쫓아냈지요. 그리고 가던 길을 계속 가는데, 검은 소가 쫓아오는 것입니다. 맹사성이 “어여 네 갈 길 가거라.”하는데도, 검은 소는 한사코 맹사성을 쫓아옵니다. 할 수 없이 맹사성은 검은 소를 데리고 집으로 갑니다. 이후 검은 소가 건장한 소로 자라자, 맹사성은 검은 소를 타고 다닙니다. 맹사성과 검은 소가 서로 느낌이 통했고, 또한 맹사성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청빈한 재상이라 검은 소를 타고 다닌 것이겠지요. 

이렇게 맹사성이 검소하게 소를 타고 다니다보니 생긴 일화도 있습니다. 하루는 어느 고을 수령이 맹사성이 자기 고을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어귀에서 맹사성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고을 수령으로서는 이 기회에 맹사성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웬 촌로가 – 수령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겠지요? - 어슬렁어슬렁 소를 타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아니? 이 영감탱이가 뉘 앞이라고” 수령은 당장 하인을 시켜 촌로를 꾸짖고 쫓아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촌로가 실은 자신이 기다리던 맹사성임이 밝혀집니다. 수령은 놀라서 도망하다가 연못에 관인(官印)을 빠뜨리는데, 그래서 이 연못을 인침연(印沈淵)이라고 부른다네요. 하하하! 수령이 얼마나 놀랐으면, 관인을 연못에 빠뜨리누? 

 

   
▲ 명재상 맹사성은 검은 소를 타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이제 세월이 지나 맹사성과 검은 소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맹사성이 세상을 뜨자, 가족들은 맹사성을 이 곳 곧은골에 모십니다. 그러면 맹사성을 떠나보낸 검은 소는 그 후 어떻게 지냈을까요? 검은 소는 맹사성이 죽은 것을 알게 되자, 그때부터 슬퍼하며 식음을 전폐합니다. 자기를 알아준 맹사성을 따라가겠다고 작정을 한 것인가요? 

검은 소가 죽자, 사람들도 검은 소의 정성과 사랑에 감동하여 검은 소를 맹사성 옆에 묻어줍니다. 그리고 검은 소의 무덤을 흑기총(黑麒塚)이라고 부릅니다. 검은 소를 상서로운 동물 기린과 다름없다고 생각하여 소무덤을 특별히 흑기총이라고 이름 붙인 것인가? 아니면 평소에도 영특한 소라 ‘흑기(黑麒)라고 불렀던 것인가? 

어쨌든 그건 그렇고, 온양사람 맹사성의 무덤을 왜 여기에다 썼을까요? 이곳은 세종이 청백리 재상의 공로를 높이 사서 사패지(賜牌地, 임금이 내려 준 논밭)로 내려준 곳입니다. 그렇기에 자손들이 맹사성을 사패지에 모신 것이지요. 맹사성이 사패지로 받은 땅이기에, 묘지 뒷산인 영장산도 맹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분당에 맹산공원이 있는데, 바로 맹산 줄기에 있기 때문에 맹산공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맹사성의 무덤과 흑기총을 둘러보고 내려갑니다. 청백리 재상 맹사성과 검은 소의 흔치않은 사랑과 우정! 맹사성의 묘와 흑기총에서 또 하나를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