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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백제의 시조인 온조를 모신 사당 숭렬전

   
숭렬전 전경 맨 위에 숭렬전이 있다

 

   
오른쪽 맞배지붕 건물이 숭렬전, 왼쪽의 건물은 이서장군의 사당

 

   
오른쪽 건물이 온조의 사당인 숭렬전

 

   
담장으로 둘러싸인 숭렬전 외부모습

 

   
사당 앞에 있는 건물로 제사 때 주로 쓰이는 강당

 

   

일제강점기에 찍었던 사진. 복원공사가 끝난 enl에 발견되어 현재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진의 모습으로 복원될 것이다.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이 된 한양의 남쪽에 있는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요충지였고, 백제가 처음 도읍을 정한 하남 위례성과도 인접하여, 삼국시대부터 성을 쌓고 지켜왔다.

처음에는 흙을 다져서 쌓은 토성이었다가 차츰 석성으로 바뀌었고, 조선 시대 임진왜란을 당한 뒤에 인조때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완비했는데 인조는 여진족인 북방 오랑캐가 중원을 차지한 것이 국가간의 위계를 어기는 불충의 극치라며,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런 조선을 곱게보지 않았던 청나라 누르하치는 날센 기병을 앞세우고 단번에 쳐내려와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할 시간도 없어 이곳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결국 굴복하여 청의 수도인 심양을 향하여 9번 절하고 9번 고두를 하는 의식을 거치고서야 다시 조선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후에도 오랑캐인 청나라를 쳐서 명나라의 원수를 갚겠다고 북벌을 꿈꾸기도 하였지만 비탄에 빠진 민생고의 해결도 못하던 조선은  일제가 나라를 송두리채 집어삼키는 최후까지도 청에는 마음을 바쳐 섬기지 않았다.

그런 남한산성에는 인조가 피신했던 인조의 꿈에 나타나 청나라의 침략을 알려주었던 백제의 시조 온조를 모시기 위하여 사당을 지었는데,  특이하게도 인조 당시 산성을 축조하던 장군  충장공 '이서'의 신위를 모신 사당도 함께 있다.

그 까닭은 온조가 인조의 꿈에 나타나 청나라가 기습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온조의 사당을 먼저 지어준 것이고, 인조의 꿈에 온조가 다시 나타나 첩첩산중에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외롭다고 하소연하자 축성을 지휘하던 이서장군이 갑자기 병으로 죽게 되자 온조가 같이 있고 싶어서 데리고 간 것으로 생각해서 온조의 사당 안에 별채의 건물을 지어 '이서'장군을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서는 무관의 장군이었으나 평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또 효성이 지극했다고 하여 죽은 뒤에는 영의정으로 추서되었고 충장공으로 시호도 받았다.

숭렬전은 이제 세계문화유산이 된  남한산성과 임금이 거처하던 행궁의 뒷편으로 능선을 하나 넘으면 있다. 이런 연유로 남한산성 내에 있는 온조의 숭렬전을 돌아보니, 수천년 격동의 시대를 거쳐온 한민족의 역사가 아련하게 느껴진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회원, 문화유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