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저 걸개에 핀 말꽃을 보아라
하늘벽에 걸린 걸개
한 그루 말꽃“
“‘말꽃’은 말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 또는 말로써 피워 낸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으로, ‘말의 예술’이라는 본디 뜻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안성맞춤인 낱말이다.” 우리말대학원장과 국어심의위원장을 지낸 국어학계의 원로 김수업 선생은 이렇게 문학을 “말꽃”이라 표현한다.
그 말꽃이 최인호 시집 《바람의 길목에서(교음사)》에서 활짝 피어난다. 얼마 전 일본 교토의 김리박 시인이 《울 핏줄은 진달래(도서출판 얼레빗)》란 순 토박이말 시조집을 낸 바 있는데 최인호 시인 역시 순 토박이말로 시집을 내 화답한다. 토박이말만으로도 얼마든지 맛깔스러운 시, 말꽃을 피울 수 있음을 중명한다.
“눈으로 맞는 새해
펄펄 아우성
달빛 별빛 머금은 천둥번개 가루들
네 집은 큰산 큰그늘
별빛 따라 어둠 따라
바람 따라 놀더니
오늘은 누항 저잣거리에서
몸을 푸는구나.“
시집의 시작을 그는 “눈”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하동 두메에서 자연과 함께 살더니 자연과 하나 되었거니 “앙칼진 아침 / 너그러운 햇살 비칠 때 / 떠나지 못하던 임이 / 떠남을 보누나 / 떠나지 못함으로 떠나감을”이라며 겨울을 노래하고, “뜬눈으로 / 아침거리에 서면 / 눈길 끝나는 아침 저편 / 아우성으로 몰려오는 / 사월 / 저 시리디 시린 봄날”로 봄날을 보낸다.
그걸로 끝낼 그가 아니다. “광화문 근방에는 두 가지 눈이 온다. / 사람이 있을 땐 잿빛으로 내리고 / 저 혼자 누웠을 땐 흰빛으로 온다 / 광화문에 내리는 눈은 잿빛이다 / 저 혼자 누워 있을 여가가 없는 거리에는 / 잿빛 눈만 온다”라며 광화문 눈 내리는 풍경을 그린다. 그러면서 “광화문에도 흰눈은 온다 / 그대 재 되는 것 두렵지 않을 때 / 그대 마음 비웠을 때 / 그대 눈 감았을 때 / 광화문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니다 / 온누리에 펑펑 흰눈이 온다”라며 마음을 비우라 한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대는 여직 깜깜한 겨울잠 / 노녘은 수폭 불장난네 인공별 날리고 / 마녘은 부산포로 미제 핵고래를 끌어들였다. / 그래도 깨어나 다시 외치라 할까 / 마른갈이 기다리는 들녘 / 때이른 물갈이라도 해보자 / 캡사이신 물대포에 값싼 쌀대포로 맞서보자 / 어서 일어나시라 할까”라면서 답답한 사회에 대고 잔잔한 울부짖음을 토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슴 작은 이를 위하여> 기도한다. “네 가슴이 작아 / 세상을 다 울기에 터질 듯하거든 / 가슴으로만 말고 눈으로 입으로 하라 / 눈으로 입으로도 모자라거든 / 머리로 손으로 울라 / 그래도 모자라거든 가슴 작은 사람아 / 너를 떠나 남이 우는 데를 가 보라 / 네 울음과 한 가지의 울음이 / 문밖에 또한 가득 차 시위처럼 넘치고 있어라”라고 말이다.
가슴 작은 이는 시인 자신도 되고 이웃의 우리도 될 것이다. 우리네 세상엔 울 일이 많다. 가슴으로 눈으로 입으로 울어도 안 되거든 자신을 떠나 남이 우는 데를 가봐야 한단다. 그래야만 이 몹쓸 세상을 견딜 수 있을 것이란다.
시인은 <뒷말>에서 시집을 낸 느낌을 말한다. “바람은 마음이다. 마음은 느낌과 생각과 뜻으로 나누어 그 속살을 풀이한다. 바람은 흐름이다. 불고 일고 휩쓸고 피고 들고 잔다고 하지만 제 본디 노릇은 흐름일 뿐이다. 그러니 마음은 흐름이다. 흐름은 움직인다. 바람은 몸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움직임과 고요는 한 가지다. 몸과 마음이 하나인 것과 같다. 나는 아직 느낌과 생각이라는 바람 동네의 들머리에 머물고 있다.”고 푸념한다.
그러면서 그는 “더불어 사는 이의 짐을 벗어난 이쪽에서 현실과 자연을 새롭게 가다듬는 데로 이르렀으면 좋겠다.”라고도 말한다. 또 “새로운 마음의 길을 찾고 이웃들의 삶과 함께 할 수 있으면 다행이겠으나 아직은 그저 바람일 뿐이다.“라고 노래집을 맺는다.
토박이말로만 잔잔하게 그러나 또렷이 자신의 바람을 얘기하고 있는 최인호 시인 시집 《바람의 길목에서(교음사)》는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이 시대에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시집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