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중국이나 조선의 우주관은 <천원지방(天圓地方)> 곧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였기 때문에 이런 그의 주장을 믿지 못하자 이순지는 월식이 언제 발생해서 언제 끝나는지를 계산했습니다. 그의 그런 계산이 맞아 떨어져 같은 시각 월식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다른 문신들도 그의 주장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순지의 이러한 주장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주장보다 100년 빠른 주장이었다고 하지요.
이순지는 또 한반도의 가운데가 북위 38도라는 것을 계산하여 보고한 일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세종대왕이 중국에서 들여 온 역서(曆書)를 통해 이순지의 계산한 결과가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며 1431년부터 이순지에게 천문 관측과 역법에 관한 일을 맡겼습니다. 이후 1436년 봉상판관(奉常判官)으로 간의대(簡儀臺- 조선시대 천문대)에서 천문 관측 임무를 맡고 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기 위해 직에서 물러났는데 이때도 세종은 이순지를 기복(起復- 상을 당해 휴직 중인 관리를 상중에도 직무를 보게 함)시키면서 다시 일을 하도록 할 만큼 신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