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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인천 계양문화회관의 3인 3색(三色)전

[국악속풀이 28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 백인영 명인이 그의 제자들과 함께 만든 예랑 가야금실내악단의 공연 이야기를 하였다. 첫 곡은 <유대봉제 백인영류 가야금 산조>로 이 음악은 원래 남도 무속 시나위에 바탕을 두고 짠 것으로 다채로운 변청(變淸)이 출연하며 경드름 부분의 삽입, 눌러 내는 역안(力按)주법과 미는 발음법이 많다는 이야기, 이어진 <낙엽>, <노을바람>, <비애> 등은 음 하나 하나에 생명의 가치를 표출하듯 외양보다는 내면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주자간의 호흡이 잘 어울린 연주로 평가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 곡 <백인영류 25현 산조 3중주>12현의 전통가야금이 아닌 25현 가야금으로 또 다른 산조의 맛과 멋을 표출하는 의욕적인 음악이며 특히 엇박 장단의 멋이나 독특한 시김새의 처리가 일품이었다는 이야기, 공연 도중에는 잠시 고 백인영을 회고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내가 그를 알게 된 배경, 방송, 사극의 배경음악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겼다는 이야기, 백인영 앞에서 함부로 가야금 타지 말라고 충고했다는 어느 원로의 이야기, 호암홀에서 유대봉류 가야금 산조를 발표했을 때, 마치 선생이 환생하여 연주한 음악회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 즉흥적 연주에 뛰어났던 명인, 그러면서도 항상 전통을 중시했던 연주자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인천광역시 계양구에서 열린 삼인 삼색전 <판굿>이라는 공연관련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판굿>이란 판을 만들고 그 위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예능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가령 판을 만들고, 판에서 하는 소리가 판소리라 한다면 판에서 추는 춤은 판춤이 될 것이며 판에서 줄을 타면 판줄, 판에서 연주를 하면 판염불, 풍물을 치면 판굿이 되는 것이다. 꼭 무당의 무속의식을 일컫는 굿이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삼인(三人)삼색(三色)전은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장르 실연을 뜻한다.

이날의 3인은 전공분야가 다른 풍물의 지운하, 서도소리 배뱅이굿의 박준영, 화관무의 김나연 등이 그의 제자들, 또는 소속단체의 회원들과 함께 한 무대에 섰다. 이 공연을 기획한 풍물의 지운하 명인은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는 우수한 예술을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고, 그 맥을 이어가는 후학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3인이 함께 무대를 만들었다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예로부터 전통음악에서의 악이란 개념은 기악의 악(), 성악의 가(), 춤의 무()를 동시에 일컫는 말이었다. 가야국의 가야금 명인 우륵(于勒) 선생이 신라에 투항해서 진흥왕으로부터 신라의 젊은 제자 3인에게 악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받았다. 우륵은 이들에게 가야금만을 지도한 것이 아니라, 계고라는 제자에게는 가야금, 법지에게는 노래, 그리고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보인다. 바로 악의 개념은 기악, 노래, 춤을 동시에 일컫는 말이었음을 알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럼으로 이날, 계양문화회관에서 3인이 의기투합하여 의욕적으로 만든 무대는 바로 전통음악의 현장이었음을 알게 하는 삼색전으로 모두 8종목을 무대에 올렸다. 첫째 무대는 길놀이가 극장 밖에서부터 시작되어 관객석을 지나면서 관객의 시선을 모아 무대로 이어졌다. 무대에는 고사상이 차려지고, 여기서는 남기문 외 4인의 비나리와 사물의 연주가 서서히 관객을 사로잡기 시작하였다.

 

사물놀이는 언제 어디서 들어도 신명을 자아낸다. 최근 정치권의 요동으로 시민들은 우울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이러한 기분을 잠시라도 잊게 해 준 것이다. 특히 이 사물연주에 맞추어 구성지게 넘어가는 남기문 명인의 꽹과리와 목청을 돋우는 비나리 가락은 가슴속에 꽉 막혀있던 답답함이 시원스럽게 풀렸다는 반응이다. 오랜만에 듣는 비나리 가락이어서 더더욱 정겹고 흥미진진했다. 쉽게 듣기 어려운 가락과 사설, 오랜 공력이 들어있는 구수하고 멋진 가락, 남기문의 비나리가 객석으로부터 환호를 받고 퇴장하면서 두 번째 무대인 김나연 외 17명의 화관무(花冠舞) 순서가 이어졌다.


 

이 춤은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 귀한 춤이다. 해주와 개성 등지에서 마을의 큰 행사, 축제가 있을 때 추어온 춤으로 그 지방색은 물론, 궁중무용과 같은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면서 해서지방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반주음악이 또한 멋이 있는 전통의 민속무용이다. 이 춤은 오랜 시간 그 춤사위와 기교를 습득한 해서지방의 권번 기생들이 나라의 태평성대, 백성의 안녕 등을 기원하며 추었던 춤으로도 전해오고 있다.

 

황해도 화관무 보존회차지언 전수조교가 전해준 소개 자료에는 이 춤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는 아래의 시()가 들어 있어 이를 소개한다.

 

노란 저고리에 금박물린 홍색치마,

금박무늬의 황색 몽두리를 입은

아름다운 나비들이 내려앉았다.

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강한 손놀림이

오색 한삼을 공중에 흩날리고,

하이얀 버선 끝이 부끄러이 내민

버선의 앞 코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강한 디딤으로 발끝을 찍어 누른다.

찼다가 기울고, 기울었다가 또 다시 차는

하늘의 달처럼,

우리네 삶이 그러한지 나비들은 둥글게 그렇게 달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