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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새벽닭은 누가 시켜서 울지 않는다며 왜경을 혼낸 어윤희 지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43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가녀린 여자에게 수갑을 채우지 마라 / 수갑 들고 군화발로 잡으러 온 순사 호통 치며

물리친 장부 / 동학군 앞장선 남편 / 신혼 3일 만에 왜놈 칼에 전사한 뒤 나선

독립투사 길 (중간줄임) / 이화학당 어린 유관순 함께 잡혀 / 먹던 밥 덜어주며 삼월 하늘 우러러 보살핀 마음(중간줄임) / 여든 해 삶 마치고 돌아가던 날 / 내리던 희고 고운 눈

순결하여라.“ - 이윤옥 시, 개성 31 만세운동을 쥐고 흔든 투사 어윤희’ -


 

오늘은 독립투사 어윤희 (魚允姬, 1877.6.30~1961.11.18) 선생이 생을 마감한 날입니다. 선생은 신간회와 근우회 개성지회 창립의 주역으로 활동한 독립투사로 충북 충주군 소태면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은 16살에 혼인을 하였지만 3일 만에 남편이 동학군으로 나가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고 2년 뒤엔 아버지마저 죽자 개성으로 떠납니다. 개성에서 43살 되던 해에 3월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어윤희 선생은 독립선언서 2천 장을 개성 읍내 거리에서 뿌리면서 독립운동에 앞장섭니다. 이 일로 선생은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1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갇히게 됩니다.

 

마침 투옥 중인 유관순을 비롯한 나이 어린 동지들을 보살피며 일제에 맞선 어윤희 선생은 조사를 받을 때 배후가 누구인지 캐묻는 왜경을 향해 새벽이 되면 누가 시켜서 닭이 우나? 우리는 독립할 때가 왔으니까 궐기한다.”라고 호통을 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개성여자교육회 창립, 독립운동에 자금 지원, 독립군에 은신처 제공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일제말 개성에 우리나라 최초로 보육원을 설립하여 헐벗은 고아들을 돌보는 따스한 인정을 베풀기도 했지요. 196111월 경향신문에서 유달영 씨는 어윤희는 조선을 다 뒤져도 몇 안 되는 독립운동가라면서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 베개를 적셨다는 글을 남겼을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