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삼인삼색 지운하의 무대

[국악 속풀이] 29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배뱅이굿 이야기를 하였다. 박준영의 배뱅이굿은 김관준김종조이인수이은관의 소리를 이어받고 있어서 대략 120여 년 전의 소리계보를 지니고 있다는 점, 초창기 서도소리꾼으로는 <배따라기><영변가>로 유명한 장계화도 있었고, 곽바람과 최바람이 수심가를 잘 불렀으며, 배종빈도 있었다는 점을 예기했다.

 

또 원각사 시절에는 문영수나 이정화 등이 재담가인 박춘재와 함께 활동하였고, 평양 기성권번의 김밀화주는 장학선, 이정렬, 이반도화 같은 명창들을 길러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이진봉, 김옥엽, 이영산홍, 백운선, 백모란 등도 유명했다는 점, 이은관과 함께 활동하던 여류명창으로는 김계춘이 있었는데, 이은관이 청중을 웃기는 배뱅이라면 김계춘은 청중을 울리는 배뱅이로 유명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평안도 건달이 주막집에 들렀다가 주모에게 배뱅이네 집 내력을 다 알아가지고 굿판에 들어가왔구나, 왔소. 배뱅이 혼신이 평양사는 박수무당의 몸을 빌고 입을 빌어 오늘에야 왔구나하는 흐느끼며 우는 대목이 널리 알려진 대목이며 이 부분에서 공력을 인정받게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전체적인 줄거리가 다소 허황되고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일제치하에서 웃음을 잃고 살던 당시의 대중들을 울리고 웃기는 대목이 많아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박준영은 어려서부터 이 소리를 들으며 자라다가 본격적으로 이 길에 들어섰고, 경기소리축제의 대통령상을 비롯하여 국내외의 무대공연, 방송활동, 음반제작 등으로 소리 공력(功力)을 인정받았으며 현재 서도소리 준보유자로 활동한다는 이야기, 소리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는 그를 정직한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인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극찬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삼인삼색의 마지막 출연자인 지운하 명인의 판굿 가운데 상쇠놀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한다.

 

지명인은 <남사당(男寺黨)> 출신의 유랑 예인이었다. 남사당, 또는 남사당패란 무슨 말인가? 남사당패란 개인이 아닌 집단을 의미한다. 조선조 후기,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던 단체로 전국을 무대로 삼으며 유랑생활을 하던 예인(藝人)들의 집단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다양한 재주를 지닌 사람들이 단체를 이루고, 전국을 돌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민중 속에서 민중들과 함께 애환을 함께 해 온 집단인데, 이들은 마을단위로 다양한 놀이를 펼치면서 그 수입으로 생활하는 예인들이었다.

 

그들은 한두 가지 재주로는 구경꾼을 모을 수 없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다양한 재주나 기교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예능을 구체적으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가 풍물놀이인 것이다. 풍물은 지역에 따라 풍장이라고도 하는데, 농악으로 통하기도 한다. 그런데 놀이라는 말이 따라다니는 의미로 보면 이는 다분히 그 구성이나 내용에 있어서 연희적 요소가 다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꽹과리를 비롯하여 장고, , , 쇠납(일명 날라리) 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마을을 돌면 이미 남사당패가 이 마을에 들어왔음을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된다.

 

둘째는 버나돌리기이다. 다시 말해 쳇바퀴나 대접, 대야를 40~60센치의 나무막대기나 담뱃대 위에 올려놓고 돌리는 재주를 말한다. 단순하게 돌리는 기교뿐 아니라 다양한 동작으로, 또는 2인이 서로 주고받으며 구경꾼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살판, 즉 체기(體技)놀이인 땅재주이다. 땅재주꾼을 살판쇠라고 부른다. 다른 놀이처럼 여러 종류가 선보이는데, 예를 들면 <앞곤두>라고 해서 앞으로 걸어가다가 손을 땅에 짚고 공중회전을 한 다음, 제자리에 서는 재주를 비롯하여 뒤로 넘는 <뒷곤두>도 있고, 손을 땅에 짚지 않고 공중회전을 하는 <번개곤두>도 있다. 단순하게 재주라기보다는 운동신경도 뛰어나야 하고 신체적 조건이 잘 맞아야 실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는 어름, 즉 줄타기이다. 줄타는 광대, 줄끈을 <어름산이>라고 부르며 밑에서 줄꾼과 대화를 주고받는 어릿광대가 <매호씨>이다. 줄타기는 길이 약 5~6m의 녹밧줄을 약 3m 높이로 걸어 놓고, 줄꾼은 그 위에서 앞으로 걸어가는 동작을 비롯하여 장단을 타고 걸어가는 재주, 거미줄 늘이기, 뒤로 훑기, 콩심기 등 다양한 기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악사들의 경쾌한 리듬과 가락, 그리고 매호씨의 구수한 입담, 그리고 어름산이의 멋드러진 창이나 대사 등으로 관람객들은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덧뵈기라고 부르는 탈놀음, 탈춤이다. 탈을 쓰고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춤과 노래, 대사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남사당에서의 탈춤은 어떤 행사의 성격이나 지방의 특징적 성격보다는 전국을 돌며 순회하던 유랑예인 집단으로 각처의 민중 속에서 연희되었기 때문에 그 격식이나 내용면에서 중부지방의 산대놀이, 또는 해서지방의 탈춤, 남부지방의 오광대나 야유 등을 복합적으로 채용하였다고 한다.

 

마지막 여섯째는 꼭두각시놀음, 즉 인형극이다. 연희자들은 꼭두각시놀음, 박첨지놀음, 홍동지놀음 등의 명칭보다는 덜미라는 호칭이 보편화되어 있다고 한다. 인형의 목덜미를 잡고 연희를 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로 보고 있다.

 

이상 6가지가 남사당패들이 지니고 있는 연희 종목인 것이다. 이들이 가는 곳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다른 볼거리가 없던 시대에 다양한 기교와 재주를 통해 민중들과 즐겁게 만나온 패거리가 바로 남사당이었던 것이다.

 

상쇠의 지운하 명인은 이 남사당에 들어가 조직의 최하위 그룹인 <삐리>생활부터 시작을 했다. 삐리란 바로 풋내기나 초보자를 뜻하는 말이다. 삐리로서의 생활이란 원로와 스승을 봉양해야 하고, 놀이를 통해서 끼니를 연명해야 하기에 그 학습 자체가 한과 설움의 세월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남사당에서 잔뼈가 굵은 상쇠잡이 지운하는 그 이후에도 오르지 꽹과리를 치며 60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사람이다. 태어나 한 길로 20~30년 가기도 어려운 일이거늘, 60년 외길 인생을 살았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외(敬畏)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