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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은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국무령에 뽑힌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44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26년 오늘(1214)은 백범 김구 선생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에 뽑힌 날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임시정부 행정부 우두머리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191931만세운동 직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기관의 필요성을 느낀 애국지사들이 411일 상해에 모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입법기관)을 꾸렸습니다. 이때 임시정부의 행정부인 국무원(國務院)을 구성하고 행정수반인 국무총리에 이승만(李承晩)을 추대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 한성임시정부 집정관총재를 대통령(President)’으로 번역해 사용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결국 91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지요. 하지만, 이때부터 임시정부는 크게 갈등에 휩싸이고, 미국의 신탁통치를 주장하는 이승만에 반대해 이동휘, 신채호 등이 임시정부를 떠납니다. 그리고 1925년 임시정부는 미국에 위임통치를 청원한 이승만을 탄핵한 뒤 박은식(朴殷植)을 대통령에 선출했습니다.


 

이어 개헌을 통해 대통령제를 국무령제로 바꾸고 첫 국무령(행정부 우두머리)에 여러 계열로 갈린 독립운동계의 통합을 위해서 끝까지 헌신하다 1932년 삶을 마감한 석주 이상룡(李相龍) 선생을 뽑습니다. 그러나 이후 사상적 대립과 분열이 심해지자 임시정부를 이끌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상룡 선생은 국무령을 사임합니다. 이후 양기탁(梁起鐸)안창호(安昌浩)홍진(洪震) 등이 차례로 국무령에 선임됐으나 역시 임시정부를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이후 192735일 주석제가 등장하고, 19403월 다시 주석부주석제로 개편하여 이때부터 김구 선생이 주석을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