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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사회적 선입견 속에서도 당찼던 장군의 딸 지복영 선생님께

[100년 편지 255] - 이현우 -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20세기 한국사 전공을 지망하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재학생 이현우입니다. 지난 2015년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이 국내에서 흥행했습니다. 그 후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조명이 이뤄지는 듯했습니다만 이 분위기는 본격적인 연구와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독립운동사에서 남성만 생각하고 있고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은 뒷전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독립운동의 역사 중 특히 무장투쟁 활동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광복군 출신 여성대원 중 한 분이신 오희옥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뵘으로써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초 선생님의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을 읽으면서 선생님이 젊은 시절 걸어오셨던 삶을 좀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31 만세운동이 있은 뒤인 1920년 서울에서 태어나셨고 1925년 아버지인 지청천 장군을 따라 만주로 이동하여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으며, 1930년대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뒤 떠도는 삶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1940년에 광복군이 창설되었을 때는 오광심 여사를 비롯한 다른 대원들과 함께 자원입대했고, 안휘성 부양의 3지대에서 활동했다가 다시 중경에서 활동을 이어가셨습니다.

 

당시 선생님께서 한국을 떠났을 때가 6살이었고 다시 중국 내륙을 돌아다녔을 시기가 겨우 10대 초, 중반이었고 광복군에 입대하여 생활했을 때에는 20대 초,중반이었습니다. 곧 국외에서 청춘을 다 보내신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오늘날 그 나이라면 한창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고 진로를 꿈꾸며 외모나 여가도 생각할 때입니다. 만약 선생님이 단지 당신만의 행복한 삶을 바라셨다면 친일 행위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독립운동을 선택하셨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회자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남으셨습니다. 만약 당시에 제가 그 위치에 있었다면 중간에 그만두고 친일 혹은 현실에서의 순응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보내셨던 청춘 속에서 가장 와 닿았던 것은 한국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투쟁했을 뿐만 아니라 여자라는 이유로 받은 부당한 대우를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같은 광복군 남성 대원들로부터 성적 모욕감을 받았고 한 대원으로부터 이유도 없이 뺨을 맞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 점 때문에 군인으로서의 활동을 포기하고 싶으셨을 것임에도 선생님은 복무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광복군으로 활동하는 동안 발행된 잡지 광복에 실으셨던 글 중 하나가 기억에 납니다. 선생님이 쓰신 것 중에는 이중 삼중의 압박에 눌리어 신음하던 자매들! 어서 빨리 일어나서 이 민족해방 운동의 뜨거운 용로 속으로 뛰어오라. 과거의 비인간적 생활은 여기서 불살라 버리고 앞날의 참된 삶을 맞이하자.”라는 내용이 있는데, 지금도 심금을 울리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주장은 당시의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선입견에 대한 비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남녀평등 추구에서 본다면 양성 사이 혐오와 편견이 남아 있는 오늘날에도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이 세상을 뜨신 지 9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합니다. 국내적으로 여성의 자유가 많이 보장되었지만 권리 향상이라는 명분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남성들이 피해를 보고 있고, 강남역 살인사건 같은 혐오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한 시민들의 반대에도 독립운동사가 축소되고 1948년 건국절을 골자로 한 국정 역사교과서가 강행되었습니다.

 

나라밖으로는 한일 양국 간 몇 푼의 돈으로 졸속적인 위안부 합의가 통과되면서 사람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우려 속에서 결국 한일 간의 군사협정이 짧은 시간 안에 체결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선생님이 생각하신 사회가 결코 아니라 생각되며,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종종 좌절감을 맛볼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올해 말에 있던 촛불시위와 실정한 대통령의 탄핵 가결을 통해 현실의 부당한 문제들이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현실 속의 온갖 부조리한 문제들을 기억할 것이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문제를 극복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76년 전 선생님이 스스로 광복군에 입대하셔서 나라를 되찾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려 노력했듯이 저 역시 문제들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것이고 저의 선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현대사 속 역사왜곡 문제를 바로잡아 많은 후손들이 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현 우

 

 건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12기 독립정신 답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