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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유배된 왕족들의 비통함과 강화도 교동읍성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45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가면 이제는 약간의 흔적만 남긴 교동읍성이 있습니다. 성의 둘레는 약 430m, 높이는 약 6m, 북쪽 3곳에 성문을 두었고, 각 문에는 망을 보기 위해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량루, 북문은 공북루라고 하였지요. 조선 인조 7(1629)에 처음 쌓았으며, 영조 29(1753) 고쳐 쌓았고, 고종 21(1884)에는 성문을 다시 세웠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3문이 모두 남아있지 않는데 동문과 북문은 언제 유실되었는지 잘 모르며, 남문인 유량루는 1921년 폭풍으로 무너져 석축 일부와 반원 형태의 홍예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동읍성 부근은 조선시대 여러 왕족이 귀양 와 살다가 쓸쓸히 삶을 마친 곳으로 알려져 있지요.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쫓겨난 임금들을 비롯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인조의 5남 숭선군, 세종의 3남 안평대군, 선조의 첫째 서자 임해군 등이 이곳에서 유배됐었다고 합니다. 당파싸움에서 정치인들은 도성에서 먼 해남이나 제주도 같은 곳으로 유배 됐던 반면에 왕족은 도성에서 가까우면서도 주변 바다의 조류가 급하고 접근이 어려운 교동도에 유배하면 감시하기 쉬웠을 것이겠지요.

 

교동읍성과 가까운 곳에는 1127(고려 인종6)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워졌다는 교동향교가 있으며, 피난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서린 대룡시장이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60~70년대 이전에나 봤음직한 좁은 골목길 양쪽에 늘어선 조그만 상점들과 이발소 같은 건물은 어느 순간 시간이 멈추어버린 모습입니다. 최근 강화군은 대룡시장 활성화를 위해 총사업비 10억원으로 '대룡시장 추억의 골목길 조성사업''추억의 교동섬 만들기 사업'을 확대하여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 교동도에 한번 가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