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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깊어가는 겨울밤, 잊혀져가는 서도소리에 한껏 취하다

서도소리연희극보존회, “북녘땅에 두고 온 노래” 공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닐리리타령을 구음으로 부른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듣던 경기민요 닐리리야도 아니고 비장한 남요풍의 구음도 아니다. 서도풍의 구음으로 장구와 북 타령장단에 얹어 피리의 배음으로 아주 흥겨운 소리다. 부부국악인으로 유명한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과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4호 삼현육각 보유자 최경만 명인이 주고받는 구음과 피리 소리의 조화는 극히 일품이다.


 

어제(1222) 8시 서울 대치동 한국문화의집(코우스)에서는 서도소리연희극보존회 주최, ()향두계놀이보존회와 국악공연 전문기획사 정아트엔터테인먼트() 주관으로 서도소리연희극보존회 정기연주회 북녘땅에 두고 온 노래가 공연됐다.

 

공연장은 2층까지 청중들로 가득 찼다. 유지숙 명창은 서도소리 준무형문화재지만 익숙한 소리에만 안주하는 그런 소리꾼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서도소리를 찾아 확인하고 다듬어내고 전승하는 일에 몸을 바친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 서도소리극 향두계놀이를 자비를 들여 발굴하고 보존해오는 일을 하며, 몇 년 전에는 전국의 아리랑을 찾아 다듬고 음반으로 내는 일에도 열성을 보였다.

 

역시 공연도 그럼 냄새가 물씬 난다. 공연이 사작되자 유지숙 명창과 그 제자들이 논매는소리, 자진호미소리, 밟아소리, 물푸는소리 따위 노동요와 무덤다지는소리, 자진무덤다지는소리 따위의 장례요로 시작한다.



 

에헤리 달구야 / 에헤리 달구야

달공달공 에허리 달구야

야하 야하 / 에허리 달구야

찌어 찌어 찌여차 / 에허리 달구야“(자진무덤다지는소리 일부)

 

다른 지방에서는 달구소리또는 회다지는소리라고도 하는데 집터를 다진다든지, 무덤에 주검을 묻고 봉분을 다질 때 부르는 소리다. 이렇게 자진무덤다지는소리를 부르면서 집터를 다지면 전혀 힘이 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이어서 유지숙 명창이 나와 최경만 명인의 피리소리에 맞춰 황해도 민요 감내기를 부른 다음 평안도황해도 민요 닐리리타령을 구음으로 부른다. 두 명인의 아름다운 화음은 청중을 꼼짝 못하게 붙든다. 사회를 본 김산효 평론가는 유지숙 명창을 두고 최경만 명인이 평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무대에서 피리소리로 뒤를 받쳐주는 일은 사는 동안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며 소개해 청중들로부터 큰 손뼉을 받는다.


 


두 명인의 아름다운 회음이 끝난 뒤 6살 최시연 어린이가 나와 자장가를 부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깜찍하고 대단하던지 청중들은 넋을 잃고 듣는다. 저렇게 어린 아이가 어찌 그 가사를 다 외우고 천연덕스럽게 맛을 살려가며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최시연 어린이를 가르친 유지숙 명창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최시연 어린이는 이어서 장효선 등 선배 언니들과 함께 방아찧기. 야월선유가, 몽금포타령, 홀리리 등을 함께 부른다.

 

이후 유지숙 명창과 최경만 명인이 다시 등장한다. 먼저 부른 서도소리를 대표하는 평안도 민요 수심가는 유지숙 명창이 왜 명창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만든다. 그리곤 경기민요 구아리랑이 살짝 변형된 애잔한 느낌의 궁심동 아리랑과 경기민요 한오백년과 비슷한 느낌의 어르래기를 부른다. 잊혀가는 소리를 찾아 맛깔스럽게 소화해내는 유지숙 명창에게 최경만 명인의 피리 연주는 기막힌 어울림을 맛보게 한다.


 

마지막 무대는 강원도 통천의 노젓는소리와 함경남도 단천의 고기벗기는소리 그리고 빠른 뱃노래가 이어진다. 남녘에서 흔히 불리는 뱃노래들과는 느낌이 다른 북녘의 소리를 유지숙 명창과 그 제자들은 유감없이 들려준다. 흥겹고 박진감 넘치는 뱃노래를 끝으로 짧아서 아쉬움을 주는 공연은 끝이 난다.

 

공연 뒤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장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는 우리가 늘 듣던 기존의 긴아리나 난봉가류의 소도소리들은 익숙하지만 조금은 진부해서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묻혀있던 소리를 발굴하여 다듬어서 내놓아 반갑고 정겨웠다. 또 이런 소리를 삶 속에 불러왔던 사람들은 음악을 아는 멋쟁이들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 공연은 서도소리의 폭을 넓히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라고 평했다

 

 



정동에서 왔다는 정수영(47, 교사) 씨는 서도소리 공연은 흔치 않은데 새로운 서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왔다. 그동안 난봉가 등을 참 재미있게 들어왔는데 또 다른 재미난 소리가 있다는 것에 우선 기뻤다. 특히 피리소리에 맞춘 닐리리아 구음은 정말 아름다음 화음으로 넋이 나간 채 들었다. 이렇게 새로운 소리들을 찾아내 들려주는 유지숙 명창의 노고에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유지숙 명창은 공연이 끝난 뒤 공연 전 두 달 동안이나 기침과 싸워야 했기에 공연을 과연 잘 마칠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을 했지만 공연 내내 기침 한 번 하지 않아 기뻤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청중들은 깊어가는 겨울밤 순박하고도 정겨운 북녘의 토속민요에 마음을 빼앗긴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다. 알려지지 않은 북녘민요의 서정성과 역동성을 한껏 맛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간이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