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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훈련대장감이라는 유혹에 수궁 따라간 토끼

[국악속풀이 29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20161121일과 22에는 아주 재미있는 창극이 경주 소재 서라벌문화회관에서 공연되었다. 이름하여 <4색 판소리마당>이다. 이 공연은 현재 경북판소리 예능보유자인 정순임 명창의 이름을 딴 <민속예술단 세천향>이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4색의 판소리마당이란 4종의 판소리로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를 가리키는 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판소리 전체를 창극 형식으로 꾸며 무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재미있는 한 토막을 중심으로 짤막짤막하게, 재미있게 옴니버스 형태로 엮은 것이다. 시민과 학생들이 주관객이었고, 정순임 명창의 작창, 정경호 연출, 정경옥 명창이 음악을 맡은 작품이었다. 주로 젊은 소리꾼들이 주인공으로 분하였고, 원로 예술인들은 극중에서 합창이라든가 또는 풍물과 같은 연주를 맡아서 진행하였다.

 

첫 번째 무대는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와 별주부가 만나는 대목에부터 함께 용궁으로 떠나가는 대목까지를 창과 연기로 꾸몄는데, 출연 배우들의 소리도 소리이려니와 연기도 다듬어져서 관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토끼의 역할에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4호 흥보가 전수장학생인 김예진 양이 열연을 하였고, 별주부 역은 이수자인 정소라 양, 그리고 여우의 역할은 조아라 전수장학생이 분장을 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판소리 수궁가는 바다 속의 용왕이 중병이 들었는데, 오직 토끼의 간이 약이 된다는 처방이 나왔다. 누구도 세상에 나가려 하지 않을 때, 별주부 자라가 토끼화상을 들고 나서게 되고, 육지로 나온 후, 천신만고 끝에 토끼를 만나고 달콤한 유혹으로 토끼를 유인해 온다. 막상 토끼의 배를 가르려 할 때, 간을 두고 왔다는 궤변(詭辯)으로 토끼가 무사히 탈출한다는 줄거리를 지닌 이야기이다.


 

이 노래는 임금을 위한 자라의 충성심을 높은 가치로 보기도 하고, 죽게 된 토끼가 정신을 차리고 논리를 펴서 살아나오는 기지(機智)를 교훈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도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토끼가 너무도 쉽게 별주부의 유혹에 빠져 들었다는 과정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좌우간 이 소리극은 용궁에서 세상에 나온 별주부가 토끼를 만나는 장면, 곧 별주부가 토끼를 이리저리 보더니 수인사나 하자고 청을 하고 서로를 소개하는 장면으로부터 창극이 시작된다. 별주부가 토끼를 추켜세우는 대목이 재미있다.

 

별주부; “잘났다 잘났어! 토선생 얼굴을 보니 난중일색이요. 발 맵시가 오입쟁이라. 지상에서 몰라서 그렇지, 우리 수궁에 들어가면 호걸스런 저 풍골에 훈련대장을 꼭 허시것소! 참 아깝다. 아까워!”

토끼; (토끼가 놀라며) 훈련대장?

별주부; “근디 토선생, 다 좋은 디, 그 관상을 본께. 그냥 거 미간에 화망살이 들어서 생전에 죽을 봉변을 여덟 번은 당하것소!”

토끼; (깜짝 놀라며) “어허! 그 분 초면에 방정맞은 소리를 허네! ! 여보쇼! 내 관상이 그렇게 생겼단 말이요?


 

별주부가 토끼의 팔자 흥망을 자진모리 장단에 얹어 노래로 한번 일러본다.

 

만학에 눈 쌓이고 천봉에 바람칠 제, 앵무원왕이 끊어져 화초목실 없어질 제 어둑한 바위 밑에 고픈 배 틀어잡고 발바닥만 할짝할짝 터진 듯이 앉은 거동<중략>. 송하에 숨은 포수 오는 토끼를 찡그리고 탕!

 

토끼; (기겁을 하며) ! 여보시오 그 소리 좀 빼시오. 우리 집 3대가 다 총으로 망했소! 아 근디, 수궁가면 거 총 없소?

별주부; 물속에서 어떻게 불을 붙인단 말인가 당연히 총이 없지!

 

훈련대장이란 유혹과 총이 없다는 말에 안심이 된 토끼가 웃으며 별주부를 따라 나서다가 여우를 만나게 된다. 이 대목이 또한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여우 ; 여봐라 토끼야. 너 어디 가느냐

토끼 ; 나 훈련대장하러 수궁 간다.

여우 ; 웟다 자식. 실없는 놈아, 자래 놈의 말을 듣고 망망대해를 가랴느냐? (중략) 같이 늙어 일시 이별을 마자터니, 니가 이지경이 웬일이냐? 가지마라 가지를 말어라. 위방불입을 가지마라.

 

토끼가 여우말을 듣더니 곧바로 포기한다. 이번에는 별주부가 다급해 하며 꾀를 낸다. 실은 내가 여기 온지 여러 날이 되았는디. 저 여우란 놈 만나 가지고 저를 수궁에 데려가 달라는 걸, 내가 그놈 심보를 보고 안 된다고 딱 거절을 했더니 지가 따라가려고 하는 것이여 시방. 다시 토끼도 동감하며 아, 저 여우란 놈 성격이 참으로 같소! 내 저 놈이 뭐라 해도 별주부 따라 수궁 갈라요~ 하며 토끼 깡총거리며 별주부를 따라간다.


 

바닷가에 당도한 토끼가 물을 보고 놀라면서 훈련대장 아니라 용왕을 시켜준다 해도 물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하는 것을 달래며 토끼가 물에다 뒷발을 담그자, 낚아채며

 

별주부; 여보쇼, 퇴공! 입 벌리지 마소 입 벌려 짠물 들어가면 간 녹으니 가만히 내 등에 엎어져 세상 구경이나 착실히 허시오. !

 

별주부가 토끼를 업고 만경창파를 헤치고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 합창으로 범피중류 둥덩둥덩 떠나간다. 망망한 창해이며, 탕탕한 물결이로구나를 부르며 객석 쪽으로 토끼와 별주부가 퇴장하는 장면으로 창극은 막을 내린다.

 

이 짤막한 수궁가의 한 대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크다는 점을 다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유혹하는 천사의 탈을 쓴 사람들이 주위에 널려 있음을 올바로 보고, 용궁에 갔다가 되살아 나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처음부터 따라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조용히 일러주고 있다.


시국도 너무나 어수선하고,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한 세상에서 눈을 감고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게 하는 너무도 적절한 창극이었다. 무대에 섰던 소리꾼들과 연주자들, 연출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