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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네 놈이 요새 밤이슬을 맞는다고”

[국악속풀이 30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4색 판소리마당의 마지막 무대로 흥보가 가운데 형 놀보가 동생 흥부가 부자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간 대목을 소개하였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종목이 판소리 흥보가이고, 이 종목의 예능보유자 정순임과 음악감독 정경옥, 정경호 연출자 등 3인의 어머니가 판소리, , 아쟁, 병창, 작창 등으로 유명했던 고 장월중선 명인이고, 장월중선은 고종 때의 명창이었던 숙부 장판개로부터 소리를 배웠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무대에 올린 <놀부전>은 흥보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흥보네 집으로 달려가는 대목부터 흥부처나 흥부와 나누는 대화, 그리고 화초장 하나를 빼앗다시피 메고 나오는 대목까지이며, 술상을 받아든 놀보가 흥보처에게 권주가를 청하는 대목까지 소개하였다. 흥보의 집을 보고 놀래는 대목이나 술상을 받아든 놀보가 네 여편네 곱게 꾸민 김에 권주가 하나 시켜 이놈아!” 하는 소리에 흥보처가 어이가 없어 절규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여보시오! 시숙님 여보, 여보 아주버님, 제수더러 권주가 허라는 법 고금천지 어디서 보았소. 보기 싫소, 어서 가시오. 엄동설한 추운 날에 자식들을 앞세우고 구박을 받던 일을 생각하면 곽 속에 들어가도 못 잊겠소. 보기 싫소. 어서 가시오.”

 

이번 주에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흥보가는 슬픔보다는 대체로 해학이 넘치고 부담 없는 웃음으로 이어지는 재미있는 소리제라 하겠다. 흥보처의 원망 섞인 절규도 곧 놀부의 후안무치한 언행으로 바로 잊게 만든다. 권주가 하라는 소리에 화가 복받친 흥보처는 제수더러 권주가 하라는 법이 어데 있느냐고 보기 싫다고 어서가라고 소리치며 술상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보통의 경우에는 그 다음의 전개가 매우 예상하기 어려울 것이나 놀부는 흥보처의 강한 반발을 지켜보면서도 흥보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운다. “, 흥부야, , 내가 오면 이렇게 욕하라고 시켰지?” 하는 대사로 그 분위기를 단번에 반전시키기도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척이나 형제간의 우애가 있는 것처럼 마치 동생을 위한답시고 저 계집을 버리라고 주문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색한 과정을 마무리하고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다.

내가 소문을 들으니 네 놈이 요새 밤이슬을 맞는다.”고 하더라?

밤이슬을 맞는다는 말은 밤에 남의 집을 다니며 도적질 하느라 옷이고 신이고 젖는다는 말을 재미있게 묘사한 말이다.

 

니가 자식들을 앞세워 도적질을 해 갖고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고 관가에서 너를 잡으러 다니고 있으니 세간 문서와 곡간 쇳대는 내게다 매끼고, 너는 처자를 다리고 부지거처(不知居處)로 도망하여 10년만 있다가 오너라. 내가 네 재물에다 손을 대면 내가 니 아들 놈이라고 큰 소리로 장담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누가 믿을 것인가! 누구도 믿지 못할 말을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놀부에게 관객은 더더욱 미운 감정을 쌓아가고 있다. 우선 착한 흥부도 밤이슬을 맞는다는 말에 펄쩍 뛴다. 그 뒤의 이야기를 극본을 따라가며 감상해 보기로 한다.



 

흥 보 : 형님, 그런 것이 아니올시다. 부자가 된 내력을 낱낱이 말씀하지요. 제비가 와 집을 지었는데, 하루는 구렁이가 새끼를 다 잡아 먹고 다만 한 마리 남은 것이 뚝 떨어져 다리가 작신 부러졌기로 실로 동여 주었더니 그 익년 삼월에 큰 박씨를 하나 물고 왔길래, 후원 뒤뜰에 묻었더니 큰 박통이 세 개나 열렸습니다. 그때는 팔월추석이라 먹을 것은 없어 박속이나 긁어 먹을까 하고 박 한통을 땃더니 그 박통속에서...

놀 보 : 구렁이가 나오더냐?

흥 보 : 아니요, 그 박통 속에서 쌀과 돈이 나오고, 은금 보화가 나와서 이렇게 부자가 되었지요. 형님 동생 흥보가 어찌 도적질을 하오리까?

놀 보 : ~ 부자가 되기 천하 쉽구나! 아니 그래 제비다리를 콱 분질러 부자가 되었으니 나는 여나문 마리 분질러 보내면 거부장자가 될 것 아니냐! 나 갈란다.
흥 보 : 아이고 형님 벌써 가실려고요?

놀 보 : 나 제비 잡으러 가야 쓰것다.

흥 보 : 이 엄동설한에 제비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놀 보 : 그러냐? 그럼 병아리는 안 되냐?

흥 보 : 안되지요.

놀 보 : 그럼 메추리는 안 되냐?

흥 보 : 그것도 안 되옵지요.

놀 보 : 내년 춘삼월만 오너라. 조선에 있는 제비는 다 잡아서 다리를 콱콱 분질 러 보내면 수억대 거부장자가 되겠구나.

그건 그렇고 저 윗목에 뻐얼건 저것이 뭣이냐!

흥 보 : 화초장 올시다.

놀 보 : 화초장 거 이름이 좋다. 은금보화 잔뜩 넣어 날 다오!

흥 보 : ~ 그렇지 않아도 형님 오시거든 드릴려고 미리 다 준비해 놨습죠.

놀 보 : 고놈 기특도 허다. 내게 지워라.

흥 보 : 아니 형님! 그걸 직접 지고 가실라요?

놀 보 : 그려. 이놈아~

흥 보 : 솔찮게 무거울 텐데요.

놀 보 : 그런 염려일랑 허덜말어라. 이놈아~ 매사 불여튼튼이라고 내가 메고 갈란다. 어서 지어주기나 혀!~ 이놈아!!

[놀보는 화초장을 짊어지느라고 낑낑대고 흥보는 거들어 준다]

놀 보 : [기쓰면서] 흥보, 네 이놈, 시방 이거 나 안 줄라고 잡아 당기쟈?

흥 보 : 그러기에 하인더러 짊어지고 가라 하시잖구요.

놀 보 : 잔소리 말고 어여 밀어 올려 이놈아!

[흥보의 도움으로 놀보는 간신히 화초장을 짊어진다]

놀 보 : [비틀거리며] 아따~ 제법 들긴 든 모양이다. 나 갈란다.

흥 보 : ~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자주 문안 드리오리다.

놀 보 : 그럴 것 없다. 아예 내가 하루에 두어번씩 불시로 찾아오마!

그건 그렇고 이게 뭣이라고?

흥 보 : 화짜, 초짜, 장짜, 올시다요!

놀 보 : 옴마!! 지가 유식허다고 짜,, 허네~ 한길로 쫙 내려 읽어

이놈아!

흥 보 : 화초장이옵니다. 그럼 형님 살펴 가십시오.

놀 보 : (창 길게)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얻었네, 얻었네,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오늘 걸음을 잘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