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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시인의 세상 톺아보기

마더 테레사여, 나는 사랑을 배우고, 사랑했다

[김용옥 시인의 세상 톺아보기 31]

[신한국문화신문=김용옥 시인]  그는 단지 위대한 여성이 아니라, 성실한 종교적 사명으로 봉사활동을 통해 진정한 인류애를 실천한 위대한 인간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작으나 크나 간에 동반자, , 일이 늘 여호와이레(하나님이 예비함)였다. 바티칸공의회의 페리에르 주교, 부유한 인도인 마이클 고메즈, 테레사수도회의 영적 지도자 에드워드 르 졸리 등등에 특히 교회와 언론과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사랑의 선교회를 후원하였다.

 

사랑의 선교회수녀는 개인적으로 수녀복 세 벌, 속옷 두 벌, 가디건 한 벌, 샌들 한 켤레, 묵주 한 개, 기도서, 수도회십자가, 금속숟가락, 천주머니 한 개만 소유한다. 외투와 우산조차 공동재산이다. 이런 무소유 생활로, 그는 닳아진 샌들에 천주머니 한 개 메고서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빈자와 고통 받는 자를 위해 헌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

 

선교회수녀는 고통 받는 자, 고통 가운데 고독하게 내버려진 자 속에서 골고다의 예수를 보며, 십자가에서 고통 받는 예수를 대신 보살피고 위로한다고 믿는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복음의 구절을 중학생 때부터 외며 살았다. 그런 나에게 마더 테레사는 살아있는 예수였다. (그러나 이런 예수성심공헌과 신비주의는, 인간이 인간에게 행한 최악의 지옥행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허상으로 전락되었다. 그 역사적 사실 내지 진실을 알고서 나는 어찌할 줄 몰랐다.)

 

수녀는 예수의 신부요 예수는 그들 수녀의 영혼의 신장(神將, 사방의 악신을 몰아내는 장수신)’인 셈이다. 테레사는 사람을 설득하는 명연설가요 문필가였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협력자, 조력자를 예수사랑의 심부름꾼으로 만들어 가난한 자들의 곁으로 보냈다. 1974년 첫뜻을 세운 후 3,000명의 지도자를 가진 협력자에서 물러났다. 마흔 번의 수술을 견뎌낸 후 1996년이었다.


 

그는 여행복이 많았다. 그 말은 노상(路上)에서의 삶이 길었다는 말이다. 각 구호기구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러, 강연을 하러 다녔다. 그는 TV방송과 언론의 스타였다. 그는 예수적인 사랑의 상징으로 칭송되고 세계 곳곳에, 하물며 공산주의국가에도 선교회분원을 세웠다. 그는 요지가지 상을 받았다. 크게는 1971년 요한23세평화상으로 25,000달라, 1973년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이 수여한 템플턴상,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의 명예와 상금은 모두 수도회의 자금이라고 생각한다.

 

성난 젊은이(Angry youngman)과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로 불리는 전후세대에게, 인류애와 신심을 총살당하고 핵무기로 지옥의 공포와 권위를 준 20세기 후반의 인간에게, 마더 테레사는 사랑을 실천하는 예수의 현신쯤으로 비쳤다. 그는 복 있는 자요 복 받은 자였다. 지구상에 흔전만전한 빈곤과 고통과 증오와 불행을 오직 사랑의 손길과 연민으로 어루만졌기 때문이다. 그 행위를 오직 하느님을 위해 행한다고 가톨릭적인 신심을 내세운 선교사였다.

 

그는 진실로 성스럽기를 소원했다. 의지, 이성, 고유한 인간적 삶을 포기하고, 영혼이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붙잡고 살았다. 자신을 포기할수록 하느님과 사람을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고 믿었다. 20세기 초, “예수수난신심이 강조되던 가톨릭 부흥기에 민감한 소년기를 보냈기에 고난숭배 경향이 심어졌을 것이다. 성장기의 문화가 인생행로를 결정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내가 끔찍한 두통을 얻는다면 그것을 예수님과 함께 나누며, 그분이 가시관을 왕관처럼 썼던 것처럼 그분과 고통을 같이하게 되는 것이다. 등에 고통을 느끼면 기둥에 묶인 그분의 고통을 같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손과 발에 통증을 얻게 된다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과 고통을 같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그나티우스식 영성수련을 일상생활에서도 실현하고자 했던 분이다.

 

40회나 수술을 받은 테레사는 병원에서 진통제 맞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고통예찬론자처럼 고통하기를, 고통 받기를 사랑한 것이다. 그는 고통을, 예수의 고통과 동행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는 살아있는 내내 구걸과 기부로 선교수녀회의 재정문제를 해결한 신화를 창조했다. 사람들은 마더 테레사가 하는 선한 일에 기부하고 동참하는 걸 기뻐했다. 대부분 테레사의 말씀대로 헌금 기부는 사랑의 몸짓이요 사랑의 베풂이며 하느님의 섭리라고 믿었다.

 

각국의 사랑의 선교회엔 엄청난 후원금이 흘러들었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재단이지만 그걸 아무도 공개한 적이 없었다. 아무도 선교회 분원이나 봉사자의 수를 정확히 몰랐단다. 참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조직이었다고 한다. 그는 선교회에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음식을 허용하지 않았다. 예수가 빈곤 속에 살았음을 상기하고 빈곤을 사랑했다. 빈곤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고집과 편견을 가지고 살았다.

 

마더 테레사는 가톨릭의 전도사였다. 세계 방방곡곡을 가장 많이 돌아다닌 셈이고 대중들에게 정말로 인기인이었다. 그 아무도 감히 테레사에겐 다른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모든 지도자들과 부자들을 설득하여 그의 뜻을 따르게 했다. 그랬어도 지구상의 일부지역이나마 빈곤과 고통을 없애고 천국을 이뤘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지구 곳곳에서 그의 선함을 인정한 수많은 수상에도 나는 그에게서 종교적인 성숙을 배우지 못했다. 그는 예수맹신도였다고 할까. 아직도 의아하고 궁금한 것을 나는 풀지 못하고 있다. 세계의 노상에서 나이 들어가며, 지구상황과 세계국가상황과 인간의 일생을 수없이 또는 속속들이 지켜보았을 텐데, 어떻게 예수사랑 맹신을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누구를, 이 세상의 조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어떻게 일생을 관통하여 흠모하고 존경할 수 있을까?

 

1910년에 태어나 1997년에 생을 마감한, 두 차례의 무시무시한 생지옥의 세계대전을 겪은 알바니아 출신의 여성 아녜스 콘히아 브약스히야. 사악한 20세기 인류의 마지막 등불 마더 테레사여. 그대가 등불이 되어 살아있는 동안, 나는 사랑을 배우고, 그리고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