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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시인의 세상 톺아보기

을씨년스런 가시덩굴에서 보는 어린 빈자 생각

[김용옥 시인의 세상 톺아보기 33]

[신한국문화신문=김용옥 시인]  북풍이 겨울하늘을 말끔하게 쓸어놓았다.

 

바람을 좋아하는 나는 마스크를 쓰고 털모자를 눌러쓰고 승암산에 올랐다. 가톨릭 성도들의 순례길로, 성인(聖人) 요한과 누갈다 동정부부가 안장되어 있는 치명자산이다. 찬 기운 속에 오솔길을 사슴사슴 오르는데 을씨년스럽게 가시덩굴이 헝클어져 있어 걸리적거린다. 희쭈그레하게 깡말라 보이는 가시 돋친 줄기들이 심란하고 거칠게 보인다. 마치 지독한 빈곤으로 굶주림과 혹한을 견뎌야 하는 사람이 죽지 못해 사는 모습 같다. 한겨울에 산길을 오르다가 가끔 참담한 빈곤을 생각하게 된다.

 

기후가 따뜻한 나라에선 우기(雨氣)라 해도 늘 푸른 세상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초록을 항상 보고 살아선지 따뜻한 나라의 사람들은 비교적 다정하고 느긋하고 순한 느낌을 주었다. 초록색의 맑은 기운과 피부에 다숩게 닿는 온기가 주는 성품일 것이다.

 

그런데 저 얼키설키한 가시덩굴은 고뇌와 가난을 생각나게 한다. 가난에는 여간해선 출구가 없다. 예부터 가난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 했던가. 자본의 권력은 빈자의 노동과 노력을 짓밟고 착취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빈자는 인플레이션과 부동산 폭등과 물가상승을 따라갈 방법이 없다. 어쩐 일인지, 경제선진국임에도 빈자에겐 존엄성을 지킬 정당한 권리나 생활이 보장되는 보수라는 게 없다.

 

인간은 참으로 교활한 동물이다. 동물의 세계에는 이웃의 강자끼리 어깨동무를 맺지 않는다. 사자와 호랑이가 연계하지 않는다. 맹수가 맹수끼리 연합하지 않는다. 한데 사람만은 힘의 연대를 잘한다. 부자는 부자친구를 사귀고 빈자는 빈자끼리 서로의 사정을 이해한다. 게다가 종교도 빈자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는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는 허무맹랑한 존재이지 빈자의 옆에 있지 않으니까. 빈자에게는 안전한 곳도 행복한 곳도 없다. 부자 형제도 없다. 다만 스스로, 스스로의 삶과 세상을 비탄하며 살 수 있을 뿐이다. 빈자의 신실한 노력의 상공에는 먹구름이 가득할 뿐이다.

 

저 가시덩굴이 북풍한설 몰아칠 때의 자기를 기억하지 말아달라고 온몸으로 조아리는 것 같다. 덩굴끼리 끌어안고서 그렇게라도 의지하고 한겨울의 목숨을 살아남아야 한다고 부둥켜안고 있다. ‘최순실과 정유라에게 넘치는 돈복을 북한동포 어린이에게 주고 싶다. 아프리카의 빈곤한 어린이를 생각한다. 안착할 곳 없는 난민을 살리고 싶다. 가난에 치어 가난에 찌든 빈자를 배려하고 곁에 오래 머물기는 참으로 힘이 들지만, 그래도 돈이 제일 쉬운 이웃사랑 곧 인류애의 표현이다.


 

장발장처럼 빵 하나 밥 한 끼니가 절실히 필요한 빈자에게-생명체는 먹어야 생존을 지속할 수 있는 게 아닌가!-도덕윤리나 인간적인 자존심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생명의 존엄성과 인격적인 성장욕구가 무슨 헛소리이겠는가. 때로 빈곤은 죄악의 문을 여는 열쇠질이 된다.

 

빈한(貧寒) 중에도 인간에게 가장 불행한 일은, 가난으로 하여 어린이에게 밥을 먹일 수 없고 기본적인 교육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린이가 꿈을 꿀 수 없으며 인간에게 아무 희망이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굶주리고 무교육의 상태에 놓이는 것은 인간세상의 절망이다. 미래의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본에 길들어 자본에 눈 먼 사람들은 빈자의 괴로움이나 고통을 악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챙긴다. 상대적 우월감-갑질에 젖어서다. 부정과 부패한 자본권력이 죽지 않는 한, 빈자는 지상에 악의 묘혈을 팔 것이다. 일명 빈자는 그 사회의 최고약자다. 저능인, 장애인, 절대빈곤자를 굴레 씌운 동물처럼 함부로 부리거나 착취하는 자들을 보라. 그들은 대부분 사회적 힘과 돈에 혈안이 된 일명 강자들이다. 죄가 사망을 낳을진저.

 

각종의 어린 빈자들은 낡은 주님께 참회하거나 용서를 빌거나 밥과 교육의 축복을 빌 수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참회할 일도 용서를 구걸할 일도 저지르지 않았다. 다만 그 아이들에겐 배고픔을 잊게 할 헌금의 배려가 필요하다. 굶주림은 인간을 동물만도 못하게 만든다. 바로 보라, 그들의 소리 없고 표정 없는 눈물을. 그들의 찌그러지고 찢어진 인생을.

 

한겨울 한풍에 떨고 있는 가시덤불 곁에 오래 서 있었다. 그 길을 헤치며 가시에 찔린 손의 살갗이 쌔 하고 따끔거리며 작은 통증이 일고 있다. 한참이나 자꾸 쓰라리다. 이웃의 빈곤이 나를 쑤신다.

 

그래도 저 가시덩굴은 봄날이 오면 새 잎을 틔우고 한때나마 초록의 안녕을 구가할 것이다. 사람만이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린 빈자가 빈한의 시절을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렵다. 빈자는 겨울살기가 더 괴롭다. 난민의 한겨울 목숨부지가 고통스럽다. 빈자는 여름살기가 백번 낫다고 한 한국동란 후의 어른들 말씀이 생각난다. 극도로 가난했던 고아와 이웃의 모습이 자꾸 밟힌다.

 

사람은 죽을 때가 가까워서야 더디더디 철이 든다더니, 내가 그 꼴 났다. 한겨울이 되니 어린 빈자들이 칭얼칭얼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