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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천황의 신민을 자처한 이광수,'근대문학의 거장'으로만 포장 전시 중

인천 한국근대문학관, ‘문학관의 새롭고 오래된 식구 <新수장자료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9) 인천의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37-416)에서 열리고 있는 문학관의 새롭고 오래된 식구 <수장자료전>’을 문학인들과 둘러보았다.

 

2017년 들어 첫 기획전시로 열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이인직 혈의누, 1908, 이광수 사랑, 1938, 이해조 자유종, 1910등의 근대문학 작품과 <학지광, 6> 같은 잡지의 실물 그리고 신문소설 스크랩 등 희귀한 근대문학 원본 자료 3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근대개항기 창고로 쓰던 건물을 수리(20139월 개관)하여 쓰고 있는 전시실이라 그런지 천정이 넓고 탁 트인 공간에 전시된 전시물들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아니라도 당시의 문학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쉬운 점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특히 이번 전시물들의 작품 연대가 일제강점기라 그런지 현재의 표기를 따르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운 책 제목을 그대로 표기하고 있는 점이 아쉬웠는데 장지연 번역의 <애급근세사, 1905>, 현 채 번역의 <법란서신사, 1908> 등이 그러하다. 애급이란 현대말로 이집트, 법란이란 프랑스라는 것을 어른도 알기 어려운데 하물며 학생들이 와서 본다면 어떨까 싶다.

 

이런 것이야 조금만 신경쓰면 관람자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것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작가들에 대한 설명이다. 그 한 예로 이광수의 경우, “한국 근대문학의 거장이라고만 추켜세울 뿐 일제 침략기에 겨레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그의 친일행적은 한 줄도 적어 놓지 않고 있다. 문학관의 이광수에 대한 설명을 좀 보자.

    

 


춘원 이광수는 한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조선의 3대 천재라고도 불린 춘원은 최초의 근대 창작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비롯해 신문연재 대중소설과 역사소설, 일본어 창작 시 등 다양한 방면의 문학 창작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번 전시의 다섯 작품은 이같은 춘원의 면모를 아주 잘 보여주는 작품들 입니다.

 

혁명가의 아내1930년 춘원이 동아일보에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연재한 장편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입니다. 마의태자원효대사는 이광수가 쓴 대표적인 역사소설입니다. (사랑)는 일본어로 일본에서 발행된 책으로 1938~1939년에 쓴 장편 사랑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춘원 시가집은 이광수의 시를 묶은 시집으로 총 500부만 발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설명판이 이광수의 작품 옆 벽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문학관의 이번 전시 의도를 알 수 없어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광수를 한국 근대문학의 거장이니 조선의 3대 천재니 하는 것은 친일문학인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이광수의 면모를 있는 그대로 알리지 않는 '의도된 설명' 이라는 점에 씁쓸함이 앞선다.

 

무릇 위대하다는 작가 일수록 독자들은 그가 걸어온 길’을 알고 싶어한다. 날강도이든 살인자이든 모리배(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이든 작품만 위대하면 끝일 수 없기에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요, 그의 철학과 인품까지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사실 춘원이 친일파로 확 돌아서기 전 까지인 1938(46)년 까지만 해도 그는 꽤 괜찮은 작품들을 써서 문학의 거장 소리를 들을만했다. 어디 그뿐인가! 와세다대학을 나온 인텔리로써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하이로 건너가 도산 안창호와 더불어 독립운동을 한 것 까지는 손뼉을 받을 만한 일이다.

 

이광수의 친일행각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계기는 정신적 스승인 도산 안창호가 1938310일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고문 끝에 죽고 나서부터로 보는 견해가 크다. 그러나 그는 이미 19225<민족개조론>이란 글에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민족 간의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며 이기적이고 나약한 겁쟁이인 조선 민중은 엘리트 집단에 복종하고 봉사해야 한다.는 글에서 친일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음을 내비친바 있다.

 

자 조선의 동포들아 / 우리들이 있음으로써 / 이 큰싸움을 이기게 하자 /우리들이 있음으로써 / 대 아세아 건설을 완수하자 / 이럼으로써 비로소 / 큰 은혜에 보답하여 받듦이 되리라 / 아아 조선의 동포들아 / 우리 모든 물건을 바치자 / 우리 모든 땀을 받치자 / 우리 모든 피를 바치자 / 동포야 우리들, 무엇을 아끼랴 / 내 생명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지 말지어다 / 내 생명 그것조차 바쳐 올리자 / 우리 임금님(일본 천황)

 

이는 춘원 이광수가 일본 천황을 위해 지은 <모두 바치리>란 시 가운데 일부다. 그는 1945118일치 <매일신보>에 이 시를 발표했으며 이보다 앞서 117일에는 전쟁협력단체인 대화동맹(大和同盟)이 주도한 <처우감사총궐기전조선대회>에서 절규에 찬 목소리로 이 시를 낭송했다. 친일인명사전, 2, p744-755

    

 기자에게 이광수의 친일 행각 중 가장 으뜸을  꼽으라면 가야마 미츠로((香山光郞, 또는 香山光浪 )라고 창씨개명을 하면서 늘어놓은 궤변을 들고 싶다. 1940411일부터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이 이름을 바꾸도록 이른바 창씨개명을 단행했다. 그날 아침 총독부 관리들이 문을 여는 시각을 기다려 가장 먼저 달려가 등록을 마친 사람은 이광수였다. 그의 입을 통해 창씨개명 이유를 들어보자.

 

내가 향산(香山)이라고 일본적인 명으로 개() 동기는 황송한 말씀이나 천황어명과 독법(讀法)을 같이하는 씨명을 가지자는 것이다. 나는 깊이깊이 내 자손과 조선민족의 장래를 고려한 끝에 이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굳은 신념에 도달한 까닭이다.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 이광수라는 씨명으로도 천황의 신민이 못 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향산광랑(香山光浪)이 조금 더 천황의 신민답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국가가 조선인에게 허()였다. 이에 내선일체 운동을 할 자는 기실 조선인이다. 조선인이 내지인(일본인)과 차별 없이 될 것 밖에 바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따라서 차별을 제거하기 위하여서 온갖 노력을 할 것밖에 더 중대하고 긴급한 일이 어디 또 있는가. 성명 3자를 고치는 것도 그 노력 중의 하나라면 아낄 것이 무엇인가. 기쁘게 할 것 아닌가. 나는 이러한 신념으로 향산이라는 씨를 창설했다(뒷줄임)” -‘창씨와 나’ <매일신보> 1940. 2. 20-

    

 


인천 한국근대문학관의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문학관의 새롭고 오래된 식구 <수장자료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광수 코너'를 살펴보면서 그의 친일행각에 대한 숱한 이야기들이 뇌리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무리 문학관 쪽이 이광수의 문학성에 초점을 맞춘 전시회라고 해명한다 해도 그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관이 주장하듯  이광수가 천재적인 문학가라 할지라도 일제 강점의 쓰라린 역사 속에서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빌붙어 붓놀림을 한 작가에 대해 단 한 줄의 친일 행적’ 사실을 기록하는 데 보인 인색함은 씁쓸하다 못해 안타깝다.



그것은 문학관 쪽이 문학이 추구하는 인간 삶의 본질을 놓치고 작품으로 대변되는 되는 형체만을 중시하는 빈 껍질’에 촛점을 둔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부디 이번 전시를 통해 참관자들이 춘원 이광수를 한국 근대문학의 거장으로만 이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참고로 이광수의 대표적인 친일 작품은 다음과 같다.

  

1939.2 가끔씩 부른 노래(), 동양지광

1939.12 지원병장행가 삼천리

1940.2.20 창씨와 나, 매일신보

1940.3 내선일체와 국민문학, 조선

1940.3.2-6 지원병훈련소를 보고, 매일신보

1940.8 나의 교우록, 모던 일본

1940.9 내선청년에 고함, 총동원

1940.11 지원병 훈련소의 하루, 국민총력

1940.12 문사부대와 지원병 삼천리

1941.1 신체제하의 예술의 방향, 삼천리

1941.7.6 인고의 총후문화, 매일신보

1941.10 반도의 자매에게 고함, 신시대  외 다수    


    

 

< ‘문학관의 새롭고 오래된 식구 <수장자료전>’전시 안내>

*인천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인천시 중구 신포로 15번길 76) 032-455-7165

*37~423, 무료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