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월 13일은 북간도 용정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일입니다. "3월 13일, 보통학교 왜놈교장이 반일군중대회를 거행한다는 소식을 탐지하고 전교학생을 교실 안에 가두어 놓고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하늘땅을 울리는 '조선독립만세!'의 구호 소리를 듣자마자 학생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팔을 휘두르며 '만세'를 외치면서 유리 창문을 부수고 뛰쳐나와 거리에 달려가 시위 행렬에 참가하였다. 이 광경을 본 왜놈교장은 저도 모르게 '10년 교육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되었구나.'라고 탄식하였다." 이는 <독립신문>1920년 1월 1일치 기사입니다. 1919년 3월 1일, 대대적인 고국의 3ㆍ1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3월 13일 간도 용정을 중심으로 불길 같은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앞서 간도의 3ㆍ13 만세운동 1년 전인 1918년에는 간도의 대부(大父) 김약연 선생을 중심으로 여준ㆍ정안립ㆍ박성태ㆍ박찬익 등 38인이 고국의 3ㆍ1독립선언서보다 빠른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를 발표하기도 했지요. 3월 13일에 일어난 간도지역의 만세운동으로 공덕흡, 박상진 등 수많은 동포가 희생을 당하자 3월 17일, 용정의 각계인사들은 의사회를 조직하였고 3천여 명의 애국청년들과 동포들은 용정에 집결하여 희생된 열사들의 시체를 메고 가두행진을 하면서 희생된 열사들을 추모하고 일제의 탄압에 항거했습니다. 간도지역의 3ㆍ13 항일만세운동은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봉오동, 청산리전투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된 독립운동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