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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시인의 세상 톺아보기

잘난 것 없는 고영태가 발길로 한 번 걷어차니

[김용옥 시인의 세상 톺아보기 34]

[신한국문화신문=김용옥 시인]  거의 100일 동안 최순실-박근혜게이트의 고발자 고영태의 얼굴을 바라보고, 고영태의 목소리를 듣고, 고영태에 관한 기사와 기록을 읽고, 고영태가 제공한 태블릿PC의 녹음을 들었다. 오랜만에 한 인간에 대해 두루두루 또 깊이깊이 생각했다.

 

고영태의 가정환경과 성장환경, 고향과 달란트, 사회인으로 사는 동안의 인간환경에 대해서 생각할수록 착잡하고 가슴이 아렸다. 나는 그의 어머니뻘의 사람으로, 군사독재정치에 끄달리며 허울만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살았지 않은가. 광주민주화운동이 돌이켜졌다. 고은 선생의 <만인보>의 한 주제가 된 고영태 부모의 삶을 다시 읽었다. 그보다 훨씬 작은 시련에도 나는 얼마나 힘든 마음으로 딸을 기르며 살아왔는가......

 

소위 대통령대리인단-최고의 지식공부로 돈과 명예를 거머쥐고 은수저쯤에서 금수저로 도약하고자 하는 자들-이 최순실과 고영태씨를 치정싸움으로 저급하게 인격모독을 할 때 쯧쯧쯧쯧, 한심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기가 끝없다. 소위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라면 온 국민 앞에서 그 따위 발언을 하다니, 부끄러운 일 아닌가. 세계만방을 향해 누워서 침 뱉고 있는 꼴이다. 즉시즉시 번역해 퍼지는 인터넷시대 아닌가.

 

국회와 특검단 앞에 선 김기춘, 조윤선, 최순실 등등의 무표정하고 당당한 태도를 보며, 멀쩡한 국민을 각종 고문을 하여 가짜 반공범으로 몰고 가던 일들이 생각났다. 서울대학생 박종철 청춘은 물고문으로 가고, 군사정권시절엔 !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치욕적인 명구도 남겼다. 김근태 의원은 얼마나 고통스럽게 정신질환과 환상통의 삶을 살았던가! 그런 일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보통국민은 정의롭고 선량하고자 노력한다. 1987년 민주항쟁 때처럼 천만 명이 넘는 국민이 촛불을 들고 박대통령(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다)의 탄핵과 하야를 외치고 있다. 악의 고리를 주욱 꿴 자들이 지도층인사라니, 국민이 불행하다. 그들은 직업적 양심과 정의, 소명을 실행하고 있었는가? 어쩌자고 민주국가국민을 못살게 하고 힘들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가.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 국민의 세금과 노동력은 술수를 써서 뜯어가고 끼리끼리 부정축재 하느라 국정농단 작태까지 연출했다. 위정자는 부자인데 대다수 국민은 쪼들리며 살고 있다. 흙밥 세 끼니를 못 먹는 흙수저 청춘이 부지기수인데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돈으로 갑질에 떡칠을 했다. 죄악의 뿌리는 깊고 질기다고 했던가. 아니, 박대통령과 그 패거리의 똥배짱을 보니 죄를 인식조차 못하는 것 같다. 본디 누범자는 범죄를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법이다.

 

어찌 그 옆에는 정의로운 법조인이 보이질 않은가? 어찌 정당한 의료인은 소위 야매의사한테 밀려나는가? 직무에 충실한 관료가 아니라 비선실세가 자치고 판치는 정부라면 시정잡배의 집단 아닌가?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씨가 엄청나게 생각난다. 오죽이나 여북하면 그 상황과 그 사람이 떠오를까.


고영태는 범죄의 뿌리를 잘라버릴 용기를 냈다. 최순실과 얽힌 요지가지 내용에 살을 붙여가며 까발려질 수치를 알고도, 감당하기 부끄러운 죄를 느끼고, 이제라도 사람다운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의인인 척하는 용기도 책략도 아닌, 최소한의 국민적 인간적 양심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영태는 펜싱선수이며, 운동선수의 꿈이며 능력의 표상인 국가대표선수였다. 운동의 성적은 정직한 경기실력으로 평가된다. 운동경기에선 위선이나 사기로는 결코 승자가 될 수 없다. 고영태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펜싱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따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그리고 그의 부친 고규석 씨는, 1980오월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 총탄에 비명횡사하셨다.

 

그 불행의 후유증 속에서, 어머니의 눈물 감춘 고생 속에 성장한 고영태 씨가 이 썩은 정부를 목격하면서 얼마나 진저리나게 혐오감이 일었겠는가. 처음엔 몰랐을지라도 더러운 욕망의 범죄를 알게 된 그는 고민했을 것이다. 부모와 형제와 이웃들의 험난한 흙수저인생을 떠올리며 분노하고 슬펐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정의감을 행사할 만큼 아직 젊은 것이 국민에겐 다행이다.

 

그는 어쩌다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했을꼬. 악의 고리에 꿰인 것을 확실히 알고서, 그 악연의 줄을 끊고, 적어도 사람답게 국민답게 살고자, ‘웃픈일을 저지른 것이다. 얼마나 천만다행하고 감사한 일인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생각난다. 하느님을 후광으로 업은 성직자들이 권세놀이와 배부른 금전놀이(-박게이트와 똑같다)에 넋 빠져 썩게 만든 가톨릭의 기둥 하나를 툭 밀어붙이니, 썩음썩음하던 사방의 기둥들이 와그르르 무너진 사건일 뿐이었다. 루터는 개혁할 정도의 능력은 아니었다지 않은가. 딱 그 꼴인 거라!


 

대한민국 정부의 썩은 기둥뿌리 하나를, 크게 잘난 것도 없고 권력도 없는 고영태가 자신의 수치스러움을 깨닫고 발길로 한 번 걷어차니, 썩은 요인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진 것이다. 그걸 모르겠는가, 국민들이여?

 

이 땅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나라가 제대로 세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군사독재시절부터 오랫동안 습이 되어온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가차 없이 끊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특권층, 지배층, 재력가로 이름 얻은 국민들이 인격적인 사람으로 존경받을 수 있게 거듭날 수 있는 골든타임이기를 기도한다.

 

우리 국민들, 참 욕보고 있다.

 

* 고은 시인의 시집 <만인보>

고규석(고영태 씨의 아버지) 단상3353

이숙자(고영태 씨의 어머니) 단상3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