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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동생에게 나는 5대차 독신이라고 말하는 놀부

[국악 속풀이 30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흥보가 굶고 있는 식솔들을 살리기 위해 관가를 찾아가 환자섬을 요청하고, 병영영문(兵營營門)에 잡혀있는 좌수 대신 곤장 열대만 맞으면 서른 냥과 마삯으로 닷냥을 받는 품을 팔기로 약속한다는 이야기, 그래서 아전으로부터 선수금조로 닷냥을 받고돈 타령을 부르는 대목의 이야기를 했다.

 

그 가사는얼씨구나 좋구나, 돈 봐라, , 돈 봐라,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돈봐라 돈, 이 돈을 눈에 대고 보면 삼강오륜이 다 보이고, 조금 있다가 떼고 보면 삼강오륜이 끊어져도 보이난건 돈 밖에 또 있느냐? 라는 이야기, 집에 들어가서도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술래바퀴처럼 둥굴둥굴 생긴 돈, 생살지권(生殺之權)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돈 봐라를 부른다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부귀와 공명, 더구나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 돈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돈의 위력이 과거나 오늘이 별로 다름이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면서 돈타령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흥보가 전곡간이나 얻을 생각으로 놀부집을 찾아갔으나 박대를 당하고 매를 맞는 대목의 이야기이다. 흥부의 매품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식솔들이 굶게 되었으니 이런 딱한 일이 또 어디에 있는가!

 

흥보 부인이 마지못해 건너 마을 형님댁에 건너가서 통사정을 하고 전곡간(錢穀間, 돈이거나 곡식이거나 무엇이든지)이라도 얻어 올 것을 흥보에게 제의한다. 이 말은 듣게 된 흥보가 글쎄, 쌀을 주면 좋지만은 보리를 주면 어쩔거나?” 걱정을 하니, 부인이 아이고 이 흉년에 보리라도 많이만 주면 좋지요.”라고 응대한다.

 

그러자 흥보는 아 이 사람아 거 먹는 보리가 아니라 몽둥이 보리 말일세.라고 걱정스런 반응을 보이니 부인이 다시 받아 넘긴다. “아따 형제간에 윤기(倫紀)가 있는 디, 그럴 리가 있것소. 어서 건너가 보시오


 

흥보가 더 이상 지체할 일이 아닐 정도로 집안 사정이 다급해져 있으니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부인의 말을 듣고 기대 반, 의심 반의 심정으로 놀보집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가다가 마침 놀보 하인 마당쇠를 만나게 되었고 놀보의 근황을 확인하게 된다.

 

말씀 마십시오. 전에 작은 서방님 계실 적에는 제향을 모시면 음식을 많이 장만하야 호군(犒軍, 군사들에게 음식을 주어 위로함)을 시키시더니 작은 서방님 가신 후로는 제향을 모시면 대전(代錢)으로 바친답니다.” “대전으로 바친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접시에다 제육이나 편육이나 표지를 써 붙이고 엽전을 놨다가 닭만 울면 싹 걷어 들인데요. 그러니 이 통에 들어가셨다가는 엽전 한 푼, 못 얻고, 매만 실컷 얻어맞을 테니 그냥 건너가시지요. 라고 만류하는 것이다.


그러나 착한 흥보는 형님께 인사나 드리고 가겠다고 대문 안을 들어서서 형님, 소인 놈 문안이요를 외친다. 놀부가 흥보가 온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말이 재미있으면서도 안쓰럽다.

 

, 성씨가 뉘댁이시오?” 형이라는 사람이 동생에게 모르는 척 물으니 흥보가 어이없어 아이고 형님 동생, 흥보를 모르시오?” 되묻자, 시치미를 딱 떼고 나는 5대차 독신으로 아우가 없는 사람이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동생을 바라보며 독신이라고 주장하는 놀보의 말이 형제간에 대화치고는 너무도 잔인하고 가혹하다.


 

이 부분을 박봉술 창에서 찾아보면 형제의 관계가 더 구체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흥보가 문안인사를 해 오자, 놀보가 게 뉘시오?”라고 묻는다. “아이고 형님 동생, 흥보로소이다.” 놀보가 능청맞게 대꾸한다. “흥보, 흥보? 작년에 쟁기 지고 도망헌 놈은 청보요, 또 괭이 지고 도망헌 놈은 홍보였다. 흥보, 흥보? 금시초문인듸?, 나 과연 모르겠소!”

 

이 말을 들은 흥보가 기가 막혀 더욱 자세하게 자신을 설명한다. “형님 함자는 , ‘자요, 아우 이름은 흥보 아니요? 형님,” 놀보가 역시 시치미를 딱 떼면서 여보시오, 나는 오대차 독신으로 내려온 줄을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디, 날 보고 형님이라니? 당신 큰 망발을 해도 분수가 있지, 당신 길 잘못 들었소, 이 넘어 동네로 가서 물어 보시오!”

 

동생을 인정하지 않는 형과 무슨 대화를 더 이상 진행할 것인가! 이미 대화는 끝나버린 것이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착한 흥보가 두 손 합장하여 무릎을 꿇고, 불쌍한 동생을 살려달라고 계면조의 애절한 가락으로 한 맺힌 절규를 시작한다.

 

인명(人命)이 재천(在天)이라 설마한들 죽사오리까 마는 여러 끼니를 굶사오면 하릴없이 죽게 되니 벼가 되거든 한 섬만 주시고, 쌀이 되거든 닷 말만 주시고, 돈이 되거든 닷 냥만 주옵시고, 그도 저도 정 주기가 싫거든 이맹기나 싸래기나 양단간(兩端間)에 주옵시면 죽게 된 자식을 살리것소. 과연 내가 원통하고 분하여서 못 살것소. 천석(千石)군 형님을 두고 굶어 죽기가 원통하니 제발 덕분에 살려주오.”

 

지나가는 거지가 이렇게 애원을 해도 보통사람 같으면 동정심이 발동될 것이나, 놀보는 끝내 거부한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