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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과 도의국사 승탑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절로 알려져 있다. 그 본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통일신라 후기에 선종을 체득하여 신라로 돌아왔던 도의국사가 오랫 동안 거처했다는 기록이 있다.


도의국사는 처음에는 신라에서 화엄종계의 스님으로 출가하였다. 당시 신라는 교종(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로 당시에는 화엄종이 대세였다) 그는 화엄사상의 종주국인 중국에 들어가 중국의 화엄종을 익히고자 하여 의상대사처럼 중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도의스님은 당나라에 들어가 화엄종과 정토종, 법상종, 구사종, 삼론종 등 대표적 교학을 익히고 이후 여러종파를 두루 섬렵하는 교학 공부를 하였다. 


그러던 중 당나라 장안으로 들어가 남종선법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도의는 교학(경전위주)불교를 부정하고 조사의 심인법을 수립하여 무념무수설(無念無修說)을 강조하였다.  무념무수설이란 일체의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의 편견이나 자기만의 아집에서 벗어나는 대 자유인의 경지에 들어 수행하고 닦을 필요더 없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와 교학(화엄학)을 부정한 도의는 신라의 수도 경주에 머물지 않고 산세가 수려한 진전사에 거하면서 제자인 염거화상에게 선법을 전했다.  그리고 다시 염거화상은 자신의 법을 체징대사에게 전하였다. 한국에 선법을 처음 도입했던 도의국사는 살아서는 교종을 중시하던 신라왕실에 크게 대접을 받지 못했으나, 그 뒤를 이은 염거와 채징이 전남 장흥에 보림사를 창건하고 선풍을 날리면서 신라에 구산선문 최초로 가지산파를 세우고, 그 종조로 떠받들어지게 되어 지금에는 한국 선종의 종조로 떠받들어지게 되었다.


그가 오랫동안 거하던 진전사에는 강원도 동해 양양의 설악산에 깃든 한적한 곳으로, 현재는 산비탈면도 넓지도 않은 곳에 신라양식의 삼층석탑만이 덩그렇게 놓여있고, 석탑에서 500m쯤 더 올라가면 도의국사의 사리탑이 놓여있다. 석탑의 주변에는 금당(대웅전)으로 추정되는 뒷편에 주춧돌만 몇개 보일 뿐 주변에는 다른 전각의 흔적도 별로 보이질 않는다.


불교에서 선종은 교종과 달리 불교경전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고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던 안하던 부처님의 깨달음을 체득하면 바로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믿고 따른다.  곧 차츰 차츰 공부해서 최종적으로 박사가 되는 것이 학문의 단계라고 한다면, 선종에서는 그런 차츰차츰 단계별 공부를 거치지 않고도 깨달음을 얻으면 바로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선종의 맥은 부처님으로부터 비롯하여 첫번째 선법의 제자는 가섭존자였다. 그렇게 내려운 선의 계보는 인도에서 28대 조사가 있었고, 인도의 28대 조사인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오면서 인도에는 선종이 끊어지고, 중국으로 선이 이동하였다고 한다. 중국으로 온 달마대사의 뒤를 이어 2대 혜가-3대 승찬-4대 도신-5대 홍인에 이어 6대 혜능에 이르러 선법이 대중화 되기 시작하였고, 혜능의 법을 전수받는 많은 지맥중에 도의국사는 남악회양-마조도일-서당지장-설악도의(신라)로 선맥을 이어 한국땅에 선종을 최초로 전한 스님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후 많은 신라의 스님들이 중국의 다양한 선사들로 부터 선법을 전수받아 명산에 절을 세우고 신라에는 9산선문을 열게 되었고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각 지방에 선종이 번창하게 되었던 것이다. 선종이 들어선 이후 선사스님들이 거하던 명찰들에는 그 행적을 기록한 비석과 스님의 사리를 모시는 승탑이 화려한 모습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는 스님도 도를 깨치면 부처님과 같이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며, 이를 본받아 더욱 발심정진하여 모두가 깨달음을 얻고, 이를 중생계에 펼치기를 염원했던 것이다.


도의국사 이후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선승들의 승탑과 탑비는 신라 후기에 시작하여 고려시대까지 화려하고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전국에 구산선문에 남아있는 스님들의 화려한 승탑과 비문의 자취는 도의국사에서 부터 비롯한 것이다.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수행하고 경전을 외워도 중생이라는 것이 선을 추구하는 선종의 종지다.


불자들이 만나서 하는 인사가 "성불하세요"다. 이는 바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라는 뜻이고, 선사들 처럼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최초의 연원은 석가모니부처에게 있지만, 한국에 선종을 도입한 도의국사에게도 있다. 이곳 양양에서 멀지 않은 곳 강릉에는 구산선문 사굴산문을 개창한 범일국사가 세운 굴산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굴산사도 논가운데 커다란 당간지주만이 서있을 뿐이라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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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