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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네 이놈 흥보놈아! 굶고 먹고 내 모른다

[국악 속풀이 30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전곡간이나 얻을 생각으로 놀부 집을 찾아갔다가 박대를 당하는 흥보 이야기를 하였다. 매품을 팔아 가족을 살리려던 작전도 실패로 돌아가자, 마지막 기대를 안고 놀보집으로 건너가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흥보가 동생, 흥보를 모르시오?”라고 물으니나는 5대차 독신으로 아우가 없는 사람이라 대답한다는 이야기, 이 부분을 박봉술 창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작년에 쟁기 지고 도망헌 놈은 청보요, 또 괭이 지고 도망헌 놈은 홍보였는데, 흥보는 금시초문이라며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뗀다.

 

흥보가 다시 한 번 형님 함자는 , ‘자요, 아우 이름은 흥보 아니요?”라는 물음에여보시오, 나는 5대차 독신으로 내려온 줄을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디, 날 보고 형님이라니? 당신 큰 망발을 해도 분수가 있지, 당신 길 잘못 들었소, 이 넘어 동네로 가서 물어 보시오!”로 받는다. 그럼에도 흥보가 불쌍한 동생을 살려달라고 형과의 관계를 애절한 계면조가락으로 조목조목 확인하니 놀보가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흥보가 먹을 것을 얻으려 놀보집에 갔다가 오히려 형에게 매를 맞고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흥보가 과거지사를 꽉꽉 대노니 뗄 수가 없게 된 놀보가 말문이 막힌 것은 당연했다.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된 놀부가 마당쇠를 불러 곳간문을 열라고 지시한다. 마당쇠가 곳간문을 열어놨다고 하니 놀보의 주문이 시작되는데, 마당쇠와 놀보의 대화가 재미있으면서도 비정함을 느끼게 된다. 이 대목을 박봉술의 아니리로 들어본다.

 

, 니가 바로 그 흥보냐? 너 잘 왔다. 말을 듣고 보니 불쌍허기는 대차 허구나. 그러면 보리나 좀 타가지고 갈래?

아이고 형님, 보리는 곡식이 아니고 뭐오니까? 흉년 곡식으로는 보리가 쌀보단 낫답니다. 많이만 주시면 좋지요.”

그래라, 그럼.”

마당쇠 게 있느냐?" “” “곳간 문 열어라” “열어놨소.”



 

미리 열어놓은 마당쇠가 신이 나서 대답을 한다.

그 안에 들어가면 동면서 들어온 쌀 천석 있지?

, 갖다 조금 드릴까요?”

가만있어 이놈아

그 안에 들어가면 북면서 들어온 보리 오백 석 있지?” “, 좀 갖다

가만있으라니까, 이 때려죽일 놈이, 그 안에 들어가면 콩, , 쉰 섬 있지?” “

그 안에 들어가면 서숙(조를 말함), 그런 것 모다 있지?” “

그 안 너머에 가면 지리산서 도끼자루 헐라고 박달 몽둥이 몇 개 갖다 놨어, 그 놈 가지고 나오너라. 이놈 한 놈, 오늘 식홀 놈 있다.”

 

지독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냉혈동물임을 들어내고 있는 비인간적인 놀보의 심보를 확인하게 된다. 지리산에서 가져온 박달나무로 동생을 때리는 대목이 자진모리장단으로 빠르게 이어지는데, 이 부분의 사설을 음미하며 감상해 보기로 한다.

 

놀보 놈 거동봐라, 지리산 몽둥이를 눈 위에 번듯 들고, ‘네 이놈 흥보놈아!’ 잘살기는 내복이요, 못살기는 네 팔자라. 굶고 먹고 내 모른다. 볏섬 주자 헌들, 마당의 뒤주 안에 다물 다물이 들었으니 너 주자고 뒤주 헐며, 전곡간 주자 헌들, 천록방(天祿房) 금궤안에 가득 가득이 환()을 지어 떼돈이 들었으니, 너 주자고 궤돈 헐며, 찌갱이 주자 헌들, 궂인 방 우리 안에 떼 돼아지가 들었으니, 너 주자고 돈 굶기며, 싸래기 주자 헌들, 황계(黃鷄) 백계(白鷄) 수백마리가 턱턱허고 꼬꼬 우니, 너 주자고 닭 굶기랴

 

뒤주나 궤를 헐기 싫어서 전곡을 주기 어렵다는 이유를 대고, 돼지나 닭을 굶기는 일이 동생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놀보의 횡포는 계속된다. 놀보가 몽둥이를 들러 메고 좁은 골에 벼락 치듯, 강짜 싸움에 계집 치듯, 담에 걸친 구렁이 치듯, 후닥닥 철퍽, 흥보가 매를 맞고 힘없이 저의 집으로 건너가자, 부인이 얼마나 얻어왔는가를 묻는다.



 

흥보가 대답한다. “두 양주분이 어찌 후하시든지, 전곡간에 한짐 주시기에 몽땅그려 짊어지고 오다가 요 넘어 강정(江汀) 모퉁이에서 수십 명 도적놈들을 만나 가진 거 몽땅 다 빼앗기고 목숨만 겨우 건져서 돌아왔소" 이 부분을 박봉술의 아니리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형님 댁에를 갔더니 형님이 보선말로 우루루루 나오더니 반가하시데 그려. 방에를 들어갔더니 단단히 나무래시데, 늙어가는 형이 마음이 불안하여 설령 좀 나무랬기로 잉, 처자식을 다리로 나간후로 수년을 아니 왔다고 단단히 나무래신 후에 짝 허더니 닭 잡고, , , 고기를 많이 채려다 노면서 먹으라데 그려, 음식을 보니 집안 처자식 생각 때문에 목구녁에 넘어가나? 아니 먹고 앉었으니 눈치 빠른 형수가 처자식 줄 음식은 따로 제직해 두었다고 걱정 말고 먹으라데 그려.

 

그래 내가 헌 갓 벗어놓고 새양끗 먹고 나니 형님, 형수 공론하고 쌀과 돈을 많이 주시기여 그놈을 내가 몽똥그려 짊어지고 오난 길에, 요 아래 강정 모튕이 없나? 거기를 온즉, 어떠한 도적놈들이 썩 불거지더니마는 네 이놈 흥보야! 목심(목숨)이 크냐? 전량(錢糧)이 크냐? <중략> 싹 다 뺏기고 하나도 못 갖고 오고 매만 실컷 맞고 오는 길이지

 

흥보부인이 이 소리를 믿을 것인가? 부인의 한탄조가 시작된다.

 

그런데도 내가 알고, 저런데도 내가 아요. 가빈(家貧)에는 사현처(思賢妻), 국란(國亂)에는 사양상(思良相)이라. 내가 얼마나 부족하면 중한 가장 못 먹이고, 어린 자식들을 벗기것소.( 이하 생략)”

 

가난한 집에는 어진 부인, 나라가 어지러울 땐 명재상을 생각하게 되는 법, 이 말이 새삼스럽게 되새겨 진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