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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제비가 보은표 박씨를 물고오는 ‘제비노정기(路程記)’ 대목

[국악속풀이 31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타령>으로 걸승이 내려와 흥보네 집을 방문하고 부자 되는 집터를 잡아 주는 대목을 소개했다. 형이 준 쌀과 돈을 도적들에게 다 뺏기고 매만 실컷 맞고 왔다고 변명을 해도 부인이 믿지 않는다. 가난이 죄가 되어 흥보와 부인이 울고불고 할 때, 중이 내려오는데, 이 대목이 <중타령>이고, 엇모리 장단으로 부른다. 엇모리란 규칙적인 박자의 조합이 아닌, 3박과 2박의 혼합박 형태인 5박자로 구성된 장단이란 점을 얘기했다.

장시간이 소요되는 판소리 음악에는 느린 진양장단에서부터 점차 빠른 중몰이, 중중모리, 잦은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 장단 등, 다양한 장단 형태가 쓰인다는 점, 또한 느린 진양장단이라 해도 더 느리고, 덜 느린 형태로 구분된다는 점, 이러한 장단은 사설의 전개에 따라 각기 다른 장단이 활용되며 대체로 신령스러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경우, 엇모리 장단을 쓴다는 점, 그리고 중타령 대목을 소개하면서 복(福)이란 임자가 없다는 말이 인상적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제비노정기를 소개한다. 

제비노정기란 강남 갔던 제비가 박씨를 물고 흥보집까지 오는 행로를 기록한 대목으로 문학적인 구성이나 음악적인 구성이 잘 짜인 대목이다. 



흥보가 부인과 함께 가난타령을 하고 있을 적에 스님이 나타났고, 스님이 집터를 잡아 준다고 해서 뒤를 따라가게 되었고, 한곳을 당도하자, 명당이라며 스님은 홀연히 사라졌고, 그래서 점지해 준 그 자리에 집을 짓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비 한 쌍이 날아들게 되는데, 흥보가 고루거각(高樓巨閣) 다 버리고, 궁벽강촌(窮僻江村) 내 움막을 찾아오니 어찌 아니 기특허냐 하면서 매우 반가워하는 것이다. 얼마 안 있어 그 제비가 새끼 두 마리를 깠는데, 그 중 한 놈이 날기 공부하다가 뚝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게 되고, 흥보는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수십일 만에 다리가 완쾌되어 날기 공부에 힘을 쓰는 대목이 진양조로 이어진다. 훨훨 하늘을 날아다니는 광경을 바라보는 흥보는 “고적의 손빈이도 양족(兩足)이 없었으되, 제(齊)나라 가서 대장이 되고, 초한(楚漢)적 한신(韓信)이도 일지수(一肢手)가 없었으되, 대장단 높이 앉어 일군개경(一軍皆驚)을 하였으니” 강남으로 평안히 다녀오라고 빌어준다. 이 제비가 훗날 흥보를 부자로 만들어 준 보은의 제비인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 이듬해 봄, 강남에 들어갔던 제비가 보은표 박씨를 물고, 만리 조선을 나오는 대목이 흥보가에서 그 유명한 <제비노정기> 대목인 것이다. 이 대목은 중중모리 장단(박봉술은 잦은중중모리 장단)으로 부르는데, 강남으로부터 중국의 요동, 압록강, 의주, 평양, 개성, 서울을 거쳐 흥보의 집까지 오는 과정을 기록해 놓은 대목이 되겠다. 이 대목은 고종 때 서편제의 명창 김창환의 더늠으로 알려져 있다. 

김창환의 소리가 많은 소리꾼에게 전승된 것은 소리 자체도 잘 짜여 있지만, 매우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부침새가 일품이라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의 직계 제자뿐 아니라 박녹주나 박봉술과 같은 동편제 소리꾼들도 이 대목은 김창환의 더늠으로 바꿔 부르고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감칠맛 나는 제비노정기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흑운 박차고, 백운 무릅쓰고 거중에 둥둥 높이 떠 두루 사면을 살펴보니 서촉 지척이요, 동해창망 허구나. 축융봉을 올라가니 주작이 넘논 듯, 황우토(黃牛土) 황우탄(黃牛灘), 오작교 바라보니, 오초동남(吳楚東南)가는 배는 북을 둥둥 울리며, 어기야 어야 저어가니, 원포귀범이 이 아니냐. 수벽사명 양안태, 불승천원 각비래라. 날아오른 저 기러기 갈대를 입에 물고 일점 이점에 떨어지니 평사낙안(平沙落雁)이 이 아니냐. <중략> 

요동 칠백리를 순숙히 지내여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다달아 영고탑 통군정올라 앉어 사면을 둘러보고, 안남산 밖 남산 석벽강 용천강 좌우령을 넘어 부산 파발 환마고개, 강동다리 건너 평양은 연광정 부벽루를 구경허고, 대동강 장림을 지내 송도로 들어가 만월대 관덕정 박연폭포를 구경허고, 임진강 시각에 건너 삼각산에 올라 앉어 지세를 살펴보니,<중략>

경상도는 함양이요. 전라도는 운봉이라. 운봉 함양 두 얼품에 흥보가 사는 지라. 저 제비 거동을 보아 박씨를 입에 물고 거중에 둥실 높이 떠 남대문 밖 썩 내달아 칠패, 팔패, 배다리 지내, 애고개를 얼른 넘어 동작강 월강(越江) 승방을 지내여 남타령고개 넘어 두 쭉지 옆에 끼고, 거중에 둥둥 높이 떠 (박봉술의 창에서는 여기서부터 중중모리 장단으로 부름) 

흥보집을 당도, 안으로 펄펄 날아들어 들보 위에 올라 앉어 제비말로 운다.”<지지지지, 주지주지, 거지연지, 우지배요. 낙지각지, 절지연지, 은지덕지, 수지차로 함지포지 내지배요.> 빼 드드드드드드득 흥보가 보고서 좋아라 반갑다. 내 제비 어디를 갔다가 이제 와, 당상당하 비거비래, 편편이 노는 거동은 무엇을 같다고 이르랴.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으로 넘논 듯, 지곡 청학이 난초를 물로 송백간으로 넘논 듯, 안으로 펄펄 날아 들제, 흥보가 보고 괴히 여겨 찬찬히 살펴보니 절골양각(折骨兩脚)이 완연, 오색 당사로 감은 흔적이 아리롱 아리롱 허니, 어찌 아니가 내 제비, 저 제비 거동을 보아 보은(報恩)표 박씨를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넘놀다 흥보 양주 앉은 앞에 뚝 떼그르르르 떨쳐놓고 백운간(白雲間)으로 날아간다.”

사설도 잘 짜여 있고, 적당한 빠르기에 가락도 흥겨우며 부침새가 일품이어서 판소리뿐 아니라, 가야금 병창으로도 널리 불리고 있는 대목이다. 돌아온 제비는 흥보에게 무어라고 전하는 것일까? 제비의 울음, 제비의 말을  해석하는 것도 또한 재미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