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서울 도심에서 차량속도를 30km로 제한하자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자동차를 발명한 헨리 포드의 꿈은 모든 집에 달리는 궁전 하나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세계의 여러 곳에서 그의 꿈은 실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종 황제가 1903년 최초로 자동차를 승용차로 수입하였다. 그 후 백년이 지나 지난 2000년에 자동차 등록대수는 1200만대이었는데, 2015년에는 무려 2100만대로 증가하여 세계에서 15번째로 자동차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가정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으며 고급 승용차 내부를 보면 달리는 궁전이라는 말에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자동차는 조선 시대의 가마나 중세 시대의 마차에 비해 놀랄 만큼 빠른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현재 서울이나 부산 등의 대도시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경험하듯이 도시 내에서 승용차는 그렇게 빠른 것 같지 않다. 도로를 계속 넓힌다고 자동차 소통이 원활해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브라에스의 역설이라는 것을 들먹이는데, 그 역설이란 도로가 넓어지면 체증이 오히려 심화된다는 것이다.

 

2013년에 조사한 자료를 보면, 서울의 승용차 평균 주행 속도는 도심에서 시속 18.7, 외곽지역에서 시속 26.6로 나와 있다. 교통 방송에서 실험한 결과를 보면 출근 시간대에 서울의 변두리에서 도심까지 진입하는 데에 승용차보다 자전거가 더 빨랐다. 혼잡한 도시에서 승용차는 더 이상 빠른 교통수단이 아니다. 우리는 전문용어는 몰라도 그 사실은 이미 체험으로 알고 있다.

 

교통 혼잡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다. 교통 혼잡으로 인한 에너지 낭비와 시간 낭비를 혼잡 비용이라고 말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 전국의 혼잡비용은 무려 334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이러한 액수는 연간 국방비 수준에 맞먹는 규모로 10년 전에 비해 33%가량 증가했고, 혼잡비용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혼잡 비용만 줄여도 막대한 돈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는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면 공해 덩어리이다. 자동차는 여러 가지 대기 오염 물질의 80퍼센트를 배출한다. 특히 오존경보제 때문에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오존 가스는 자동차의 배기가스에서도 발생한다. 자동차의 타이어가 닳으면서 중금속과 작은 먼지가 발생한다. 자동차 브레이크에서는 석면 먼지가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에 자동차 브레이크에 석면 사용을 금지하였다. 자동차의 에어컨은 지구 대기의 오존층을 파괴하는 해로운 물질로 알려진 프레온 가스를 사용한다. 자동차의 차체는 수명이 다해 폐차되면 처리하기 곤란한 쓰레기 덩어리가 된다.

 

빨리 달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빨리 달리면 세밀하게 볼 수가 없다.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따라 빨리 지나가면 우리는 마을이나 숲의 윤곽만을 볼 뿐 그 안에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 마을 안의 집들이나 숲의 나무들을 볼 수가 없다. 그냥 휙 스쳐갈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걸을 때에는 달리는 차 안에서 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 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까치가 보인다. 까치집도 보인다. 나무 가지에서 피어난 꽃을 볼 수가 있다. 비가 온 뒤라면 느릿느릿 기어가는 지렁이를 볼 수도 있다.

 

도시에서 걷는 대신 승용차만 타다 보면 사람들은 서로 멀어지고 외로워진다. 한 도시에서 교통량이 많은 구역과 적은 구역을 나누어서 알고 지내는 사람의 수를 조사한 연구 결과가 있다. 교통량이 하루 2,000대 정도인 한적한 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 3명의 친구와 6.3명의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 교통량이 16,000대인 번잡한 구역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친구는 1.3, 아는 사람은 4.1명으로 줄어들었다. 자동차는 사람을 가깝게 하는 것이 아니고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승용차를 타고 가는 사람은 걷는 사람보다 괜한 우월감을 느낀다. 승용차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 보행자는 장애물로 생각된다. 빨리 가야 되는데, 왜 자꾸 빨간 신호등이 나타나 차의 흐름을 막는 거지? 저 사람은 횡단보도를 왜 저렇게 천천히 걷는 거야? 차라리 육교를 만들면 차가 빨리 갈 텐데!

 

서울시에서는 차량의 통행을 빠르게 하려고 육교를 만들고 지하도를 부지런히 만들었다. 그래서 서울시는 세계에서 육교와 지하도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되고 말았다. 육교는 운전자 입장에서 보면 좋지만, 보행자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노약자에게 육교는 넘기 힘든 고개와 비슷하다. 육교는 사람을 위한 도시보다는 자동차를 위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비인간적인 산물이다.

 

육교에서 일어나는 실족사고 외에도 오래된 육교는 유지보수 비용이 만만치 않다. 육교 하나를 관리하는데 연간 1000만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명이 다한 낡은 육교는 다시 공사하지 않고 철거하는 게 최근 추세이다. 통계를 보면 1999년에 서울시내 육교는 250곳 정도였으나, 2015년 말에는 158개로 37%나 감소했다. 육교는 앞으로도 계속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2015년에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은 4,621, 부상당한 사람은 35만 명에 달하였다. 시속 50로 달리는 차량에 사람이 치었을 경우 사망률은 45%에 달하지만 시속 30일 경우 사망률은 5%로 떨어진다. 도심의 차량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는 움직임이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시는 20153월부터 차량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한 도로인 ‘30구역을 도입하였다. 프랑스의 파리시 역시 전체 도로의 3분의 1에서 시속 30로 속도를 제한하고 있고 이를 더 늘릴 계획이다. 스페인에서도 2015년부터 전국 대다수 도시에서 시속 30의 속도 제한을 두는 새 도로법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럽의 도시처럼 속도 제한 30km를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서울 시내 차량의 평균 속도가 이미 30이하인데 굳이 속도 제한이 필요할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통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평균 속도가 아닌 순간 속도이다. 그러므로 서울시의 모든 도로에서 최고 시속 30km를 넘지 않도록 도로교통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제한속도를 30km로 줄이면 교통사고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도심에서 시속 30km로 운전하려면 대부분의 운전자는 불평을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습관들이기에 달려 있다. 처음에 시속 30km로 가려면 답답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운전자들은 적응해 갈 것이다.

 

미국의 도시 로스앤젤레스(LA)와 관련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1938년까지만 해도 LA는 태평양의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세계 최대의 전철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도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였던 GM은 기름 회사인 스탠다드오일과 타이어 회사인 파이어스톤과 제휴하여 전철회사를 사들인 다음 문을 닫아 버렸다. 철로는 도로로 바뀌고, 자동차는 잘 팔렸다.

 

오늘날 LA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많은 도시가 되었다. 환경 교과서에서는 악명 높은 'LA형 스모그의 원조 도시로 LA를 소개한다. 뒤늦게 1993년부터 LA는 전철을 다시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꽉 막힌 고속도로변에서는 아직도 옛날 철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LA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