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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배(裵)이고 이름은 설(楔) 배설이라하옵니다.

소설 "이순신의 꿈꾸는 나라2" 애정의 장 11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원사웅은 들고 온 보자기를 풀었다. 찐 감자 여러 개와 노랗게 익어 맛있게 보이는 옥수수가 전부였으나 전란 중이라 이것도 감지덕지일 게다. 원사웅은 손수 감자를 하나 꺼내서 여인에게 건넸다. 그녀는 수줍어하면서 손을 내밀어 받았다. 전혀 일을 해보지 않은 맑고 귀한 손이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상놈이나 여종 노릇을 하던 여인은 아닌 듯 했다. 바닷바람에 살짝 날리는 머릿결이 참으로 고왔다. 원사웅은 그녀와 나란히 앉아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갈매기들이 떼 지어 날아가는 그 곳에 장엄한 빛이 황홀할 정도로 아찔하게 펼쳐져 있었다.


정말 아름답구려.”


원사웅은 대자연에 심취하여 중얼거렸다. 여인의 고개가 원사웅의 어깨 위로 살포시 기대왔다. 아찔한 동백꽃 향기가 콧등을 자극했다. 갑자기 심장이 무섭게 박동하고 피가 요동치며 얼굴이 화끈 거렸다.

이것이 무슨 증세인가?’

원사웅은 자신도 모르게 한 손을 뻗어서 여인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주었다. 하늘에는 태양을 품은 노을이 있고, 땅에는 사모의 정을 품은 남녀가 있었다. 파도소리는 아득하게 들려오고 젊은 남녀의 피는 뜨겁게 흘렀다.


난 원사웅이라 하오. 낭자가 입을 열지 않으니 내 낭자의 이름을......”

소유(素柔)라 해요.”

처음으로 여인이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 대마도에서 부터 진도까지, 그리고 보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소리 내었다.

말을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소.”

원사웅이 놀란 눈으로 그녀 소유를 보았다.



처음에는 놀라서 못했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수 일 전부터 내 목소리를 찾고 도련님이 오시기를 고대하였지요.”

그랬소? 참 잘 된 일이요. 그리고 다행이요. 이렇게 고운 목소리를 다시 찾았으니 말이요. 정말 잘 되었소.”

소유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원사웅의 가슴이 다시 격탕 되었다.


집은 어딘 거요? 그 배에는 어떻게 잡혀갔고요? 부모님들은 어찌 되었소?”

하나씩 물어 주셔요.”

원사웅은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알고 머리를 가볍게 긁적였다.

우선 고향부터 물어 봅시다.”

경상도 선산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대마도까지 끌려간 것이요?”


소유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원사웅은 당황스러웠으나 그녀의 어깨를 힘주어 안아주었다. 잠시 감정을 추스르며 소유가 입을 열었다.

전쟁 중에 가족들이 모두 피난을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아버님이 복무하시고 계신 곳으로 무작정 찾아 나선 것이지요. 그러던 도중에 일본군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모녀와 숙부님이 붙잡혔지요. 일본군 대장으로 보이는 자의 명령으로 가족들과 거기서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생사는 물론 알 수 없게 되었고요. 전 혼절하여 깨어보니 어느 나무통 속이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왜놈들!”


너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다가 어두운 절망의 나무통이 활짝 열리고 꿈처럼 도련님이 나타났지요. 아아! 고맙습니다.”

소유는 원사웅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봉긋한 여인의 젖가슴이 느껴지며 뭉클한 감정의 격류가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연민과 탐욕의 젊은 피가 교차하면서 온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수군장수이십니다.”

성함이?”

성은 배()이고 이름은 설() 배설이라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