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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판소리 홍보가의 비단타령과 휘모리잡가의 비단타령

[국악속풀이 31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흥보가> , 두 번째 박에서 각종 비단(緋緞)이 쏟아져 나와서 이 대목을 비단타령이라 부르고 있다는 점, 비단이란 증((()과 같은 견직물을 이르는 말로 특히 견의 생산과 직조는 BC 3000년 중반 이전에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 우리나라에서도 기후 풍토가 양잠에 적합하여 오래전부터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며, 비단실을 켜서 비단을 짜는 일이 발달하였다는 점을 얘기했다.

 

비단타령의 마지막 부분은 청공단, 홍공단, 백공단, 송화색(松花色)까지 그저 꾸역꾸역 나오너라로 맺는데, 같은 계열의 박봉술이 부르는 대목과는 유사하기도 하고 또는 부분적으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는 점, 대개 앞부분이나 마지막 부분은 유사하고 중간부분은 첨삭 부분도 있다는 점, 이와는 달리 서울, 경기지방의 휘모리잡가에도 비단타령이 들어있으며 여기에서의 휘모리라는 말은 빠른 박자를 지칭하고, 잡가란 정가에 비해 점잖지 못한 노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휘모리잡가 속에 들어있는 <비단타령> 이야기가 되겠다.

 

이 노래는 앞에서 소개한, 판소리 흥부가의 두 번째 박에서 쏟아져 나온 비단으로 인해 이를 비단타령이라 부르는 그 노래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서울, 경기지방의 비단타령이다.

 

그 시작과 끝은 다음과 같다.

 

청색 홍색 오화잡색, 당물당천 거래시에 동경천이며 남경천, 동양천이며 서양천이라.”로 시작하여 <중략> 마지막 부분은 차시정 잠겨 있어 상방문전 빗세보고, 중방문전 에워보고 하방문전 바라보고, 목항목항 숨어보며, 틈틈짬짬 끼워보며, 대문소문 빗세보고, 안뜰 밖뜰 드나들며, 지붕마루 넘나들며 먹자던 귀, 쓰자던 귀, 기갈이 자심하고 초기가 막심하야 기다리고 바라던귀, 야반삼경 조요한데 문틈으로 넘나든 귀, 일락서산 저문 날에 지체 말고 가거스라.”

 

이와 같은 서울의 휘모리잡가의 하나인 비단타령은 판소리에 나오는 그 것과는 가사도, 창법도, 장단도, 음계도 전혀 다른 비단타령인 것이다.


 

휘모리잡가는 서울 경기지방에서 불러오던 긴잡가의 대칭개념이다. 잡가는 긴잡가나 휘모리잡가 모두 앉아서 부르기 때문에 좌창(坐唱)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긴잡가는 느린 6박의 도드리 장단으로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빠른 4박의 타령장단으로 부르는 노래를 휘모리잡가라 부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빠른 4박으로 구성된 장단을 따로 <볶는타령>이라 부르기도 한다.

 

타령장단은 4박의 구조로 음악이나 춤에 널리 쓰이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장단이다. 구음(口音)은 덩, 덕 더, 덩 기덕, - 이며 느리게 치는 경우와 보통의 속도, 또는 빠르게, 더 빠르게 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장단이 있다.


여하튼 휘모리잡가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빠르게 몰아가는 잡가라는 의미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잡가(雜歌)라고 부르는 노래는 잡스런 노래, 순수하지 않고 무언가 섞여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 한 명칭이다. 또한 <잡가>란 명칭은 부르기도 그렇고, 듣기에도 거북한 느낌이 짙은 명칭이다. 왜 이러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나는 오래전부터 국악학 학술대회나 대학의 전공자들에게, 또는 논문 작성시 <잡가>라는 용어대신 <좌창>이나 <서울의 긴소리>로 쓰기를 권하고 주장해 왔다. 그 이유는 과거 전통사회에서 상류사회의 인사들이 즐겨 부르던 정가(正歌), 즉 가곡이나 가사, 시조에 대해 스스로 즐기던 노래들을 낮추어 칭하던 명칭을 시대가 바뀐 지금까지도 자랑스럽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자신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정가가 아니고 잡가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스스로 낮추어 의미 부여를 했던 관습이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것인데 이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잡가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10~1920년대에는 증보신구잡가(增補新舊雜歌를 비롯하여고금잡가편(古今雜歌編), 무쌍신구잡가(無雙新舊雜歌), 신구유행잡가(新舊流行雜歌), 증보신구시행잡가(增補新舊時行雜歌)등 여러 잡가집이 나왔는데, 이들 잡가집에는 당시에 인기를 끌던 여러 악곡의 이름이 들어 있어서 당시의 대중적인 노래가 어떤 노래였는가를 알 게 한다.

 

다시 말해, 당시의 잡가집에는 현재의 경서도 잡가뿐 아니라 가곡, 가사, 시조에서부터 민속가의 대부분이 들어있다. 구체적으로 악곡의 이름을 들어보면 <초한가>를 비롯한 서도의 긴소리, 육자배기를 비롯한 남도의 소리, 유산가를 비롯한 경기잡가라든가 경기민요, 단가(短歌)나 회심곡, 산타령 계열의 음악 등, 그야말로 성악의 전 장르를 망라한 노래들이 섞여들어 있는 것이다.

 

어느 특정 장르의 노래만이 아닌,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종합적으로 싣고 있기에 책의 이름도 <여러 노래의 모음집>이란 뜻으로 잡가(雜歌)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잡가란 현재와는 달리 그 당시 대중들이 즐겨 부르며 유행시켰던 노래를 아우르는 이름이었음이 분명하며 이러한 노래들이 하나의 책 속에 함께 들어 있다는 의미에서 잡가라 불렀던 것이다.

 

잡가 중에서 경기잡가라든가 서도잡가는 사설과 빠르기의 정도에 따라 느린 장단의 긴잡가(12잡가)와 빠른 휘모리잡가로 나누어지는데, 휘모리잡가란 장단도 빠르게 치지만 해학적인 사설이 또한 재미있다. 해학이 담긴 사설을 휘몰아치듯 빠른 장단으로 부르는 노래가 바로 휘모리잡가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