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작은 것이 아름답다

환경이야기 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환경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어 가운데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최초의 환경경제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슈마허가 1973년에 쓴 책의 제목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공장을 크게 지어 대량으로 생산하면 이른바 규모의 경제 효과가 나타나 보다 값싸게 많은 물건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이론이 있다. 물론 모든 이론이 그렇듯이 규모의 경제이론도 근래에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해져서 어떤 분야에서는 소품종 대량 생산보다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가 더 유리하다는 식으로 수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학을 따르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더 큰 것, 더 많은 것이 좋다고 보는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큰 것이 좋고 많은 것이 좋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우리의 자녀를 아직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나의 세대만 해도 많이 달라졌지만 나의 부모 세대만 해도 자녀가 많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자녀의 수가 5~7명인 집이 대부분이었다. 큰 차와 넓은 평수의 아파트, 대형 냉장고와 커다란 TV는 아직도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정치가는 국민 소득을 두 배로 늘려 주겠다고 장미빛 공약을 한다. 기업인은 끊임없이 사업을 키우고자 한다. 목사님은 교인 수를 늘게 하려고 열심히 기도하고, 스님들은 큰 불사를 이루고자 하는 원력을 갖는다. 아이들은 장난감이 많은 것을 자랑하고, 어떤 부모는 자녀의 키를 크게 하려고 의사와 상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크고 많은 것이 좋은가? 환경주의자들은 환경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크고 많은 것을 추구하는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부터 2500년 전에 살았던 노자 사상은 현대의 환경주의자들이 재조명하고 있는 사상인데, 노자의 <도덕경> 80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소국과민 사유집백지기이불용 (小國寡民 使有什伯之器而不用)

될 수 있는 대로 나라의 크기를 작게 하고 나라의 인구를 적게 하라.

온갖 생활의 그릇이 있어도 쓸모가 없게 하라.”

 

많은 것을 추구하면서 소비주의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이 이러한 노자 사상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노자 사상이야말로 지구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환경 문제에 대해서 해결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생각된다.

 

그 전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권을 읽다가 노자의 구절과 비슷한 의미의 구절을 발견하였다.

 

소중현대(小中現大)

 

해석하면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다 들어가 있다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명나라의 문인 화가인 동기창(董其昌)이 작은 화첩에 역대 명화 대작들을 축소하여 복사하듯 그려 넣고는 그 표지에 소중현대라고 적어서 유명한 말이 되었다고 한다. 유흥준 씨는 문화에서도 소중현대의 철학을 배워야 할 시점이라고 책에서 지적하였다. 미루어 짐작컨대 문화계에도 큰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그러나 이처럼 글만 인용해서는 현대인은 결코 설득되지 않는다. 구체적이며 과학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큰 것이 아름답지 않은 몇 가지 이유를 나열해 본다.

 

첫째, 큰 것은 유지비가 많이 든다. 지금까지 좋은 것으로만 여겼던 큰 집과 큰 차는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 집이 크면 겨울에 난방비가 많이 들고 여름에는 냉방비가 많이 든다. 차가 크면 등록세부터 시작하여 세금이 많고, 연료를 많이 소비하므로 유지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둘째, 대규모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려면 운반비가 많이 든다. 경제학 용어를 빌면 물류비용이 많이 든다. 제주도에서 생산한 삼다수를 전국에 공급하려면 가까운 생수공장에서 공급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물류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프랑스의 에비앙 생수는 먼 곳에서 오기 때문에 운반비가 많이 들고, 국내산 생수보다 비싸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한 개의 대규모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전국에 공급한다면, 생산 단가는 낮아질지 몰라도 송전 과정에서 에너지가 많이 낭비된다. 작은 규모의 발전소를 여러 개 만들어 가까운 수요처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에너지 효율 면에서 훨씬 경제적이다. 자기 집 지붕이나 마당에 태양에너지 판넬을 설치하여 소량으로 전기를 만들어서 사용하면 운반비가 들지 않으므로 환경적으로 매우 바람직하다.

 

셋째, 하나의 대규모 생산자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 달리 표현하면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것이 위험 부담이 적다. 자동차 부품을 독점 공급하는 만도기계가 파업을 하면 현대, 대우, 기아의 자동차 생산 라인이 모두 멈추게 된다. 농산물 공급도 마찬가지이다. 전남 무안의 대규모 양파 단지에서 양파를 대량 생산하여 전국의 시장에 공급하는 것은 매우 위험 부담이 크다. 무안의 양파 단지에서 예측하지 못한 병충해가 발생하거나 가뭄 또는 태풍으로 흉작이 되면 전국의 양파 공급이 중단된다. 여러 개의 작은 밭에서 양파를 생산하여 인근 도시에 공급하는 것이 위험부담이 적다.

 

넷째, 집단이 커지면 구성원들은 서로를 모르게 된다. 옛날 일이 생각난다. 언젠가 성경 공부 도중에 목사님이 질문을 하셨다. “여러분은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이 충만한 교회, 부지런히 모이는 교회, 사회에 봉사하는 교회, 열심히 기도하는 교회 등등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다. 내 차례가 되어 나는 작은 교회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수천 명 교세를 자랑하는 큰 교회에 다니면 담임 목사님을 만나서 진지하게 상담할 시간이 없다. 교인끼리도 서로 모르고 지낸다. 내가 미국 유학 시절에 다니던 교인 30명의 조그만 한인 교회가 교인수 3만을 자랑하는 대형교회보다 더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모든 교인이 한 가족처럼 동고동락할 수 있었다.

 

다섯째, 환경적으로 보면 큰 것은 결국 큰 쓰레기로 변하고 만다. 내가 즐겨 인용하는 쓰레기 법칙에 의하면 물건+시간=쓰레기이다. 처음 구입한 새 차는 얼마나 가슴 뿌듯한가? 새로 산 모피 옷은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모두 쓰레기가 되고 만다. 큰 차는 큰 쓰레기로, 작은 차는 작은 쓰레기로 변한다. 환경부에서 전국의 쓰레기를 처리하느라고 드는 비용이 2016년에 3500억원이나 되었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만드는 쓰레기는 약 1kg이다. 쓰레기양을 줄이면 그만큼 처리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30여 년 전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내가 받은 인상은 모든 것이 크다는 느낌이었다. 차도 크고, 집도 크고, 사람도 크고, 심지어는 참새도 컸다. 미국에 갔다 온 많은 한국 사람이 비슷한 느낌을 이야기한다. 우리나라는 국가발전의 이상적인 형태로 미국 모델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모든 것이 큰 미국을 따라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국토가 작은 유럽 모델을 따라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는 중대형 차들이 많지만, 일본이나 유럽의 승용차는 대부분 소형이라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나는 1988년에 처음으로 차를 샀는데 평생 소형차를 탔다. 처음 산 차는 문이 세 개 달린 프라이드 DM’이었는데, 이어서 프라이드 베타’, 티코, 마티즈를 거쳐서 현재는 모닝을 타고 있다. 모닝은 연비도 좋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반만 내므로, 전체적으로 유지관리비가 큰 차의 1/2밖에 들지 않는다.

 

2년 전에 강원도 평창에 집을 지을 때에 현지인으로부터 받은 조언은 집을 작게 하고 텃밭도 작게 하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매우 적절한 조언이었다. 집이 크면 청소하기도 힘들고 난방비도 많이 나온다. 집이 크면 유지관리비가 아무래도 많이 든다. 텃밭이 크면 잡초와의 전쟁을 치르느라고 여름 내내 매일 중노동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더라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가치관에 따라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큰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작은 것을 추구하고, 작은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