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무명작가 미야자와 겐지는 죽어서 그 이름을 남겼다

[맛있는 일본이야기 l 40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 땡볕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고

결코 화내지 아니하며 늘 조용히 미소 지으며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먹으며

모든 일에 제 이익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깨달아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 숲속 그늘에 지붕을 새로 이은 작은 오두막에 살며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돌봐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가 계시면 가서 그 볏단을 져주고

남쪽에 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할 것 없다고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부질없는 짓이니 그만 두라고 말리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위 닥친 여름에는 어찌할 바 몰라 허둥거리고

모든 사람에게 바보 소리를 들으며

칭찬도 듣지 않지만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이는 일본의 국민작가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1896827~ 1933921)가 지은 유명한 비에도 지지 않고(ニモマケズ)’ 시다. 고향 이와테에서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겐지는 도쿄로의 진출을 꿈꾸다가 25살 때(1921) 대도시 도쿄로 무작정 상경을 한다. 먹고 잘 곳도 없는데다가 일거리도 없어 어느 회사에 들어가 전단지라도 붙이는 일을 찾으나 그도 여의치 않아 아버지 지인 집을 찾아 지내는 등 온갖 고생을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동화를 집필하는 등 몸을 아끼지 않고 뛰던 그는 상경 7달 만에 3살 아래인 여동생의 병환으로 급히 귀향길에 오른다. (동생은 겐지가 귀향 뒤 3개월 만에 병사) 겐지 자신도 어렸을 때부터 비후성비염(肥厚性鼻炎)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도회지와는 맞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겐지는 이후 고향 이와테에 정착하여 비로소 안정을 되찾아 향토애가 짙은 서정적인 필치의 작품을 많이 쓴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지주들의 수탈로 가난에 허덕이던 농촌의 비참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쓴 은하철도의 밤같은 것도 있는데 이것은 훗날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원작이 된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명시 비에도 지지 않고는 그가 숨지기 2년 전 인 1931년 11월 그의 수첩에 적어둔 메모 형식의 글이다. 이 시에는 겐지가 갖고 있는 삶에 대한 태도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천천히 시를 음미해 보면 인간이 어떠한 자세로 삶을 살아야 좋은 지를 한 장의 수채화처럼 그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젊었을 때는 열심히 살다가 나이 들어서야 깨달을 수 있을 법한 그런 인생 길을 겐지는 35살이라는 나이에 이미 깨달아 버렸는지 모른다.

 

이 시를 쓴 2년 뒤 겐지는 37살의 나이로 급성 폐렴에 걸려 숨을 거둔다. 사실 겐지는 도쿄에서 28살 때 첫 시집 심상스케치 봄과 수라(心象スケッチ 修羅)를 자비 출판으로 1,000부를 찍어 냈지만 거의 팔리지 않는 실패작이었다. 시 뿐이 아니라 그의 수많은 명작들은 살아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무명작가로 고향 이와테에서 결혼도 하지 않는 채 37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