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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우리 집 우렁각시, 엄마 / 길송월

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9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집에 들어서는 순간 고소한 음식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신발을 벗기 바쁘게 허둥지둥 주방에 들어가 보니 그릇에 수북하게 담겨져 있는 만두가 아직도 따끈따끈하다. 그제야 동지날 팥죽 먹는 것이 전통적인 민속습관이지만 올해는 애동지(음력으로 초순에 드는 동지)라서 만두도 먹어야 된다고 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떠오른다.

 

명절이나 기념일이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우리 집 식탁에까지 놓고 가시는 우렁각시는 다름 아닌 우리 엄마다. 그 어떤 산해진미와도 비길 수 없는 엄마가 정성들여 만드신 만두를 나는 볼이 미여지게 집어먹는다. 그러면서 불혹의 나이에도 부모님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있다는 현실에 나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남실거린다.



 

명절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유래에 따라서 지정된 음식을 먹으면 무조건 액운을 쫓고 만사형통하다는 말이 물론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을 어기면 마치 큰일이나 나듯이 늘 잊지 않고 챙겨주신다. 매년 음력설이 지나서부터 엄마는 정월대보름에는 꼭 부럼을 깨먹어야 부스럼이 나지 않고 일년 동안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말씀해주신다. 귀띔해주시고도 혹시 지나쳐 버릴까봐 엄마는 오곡밥에다가 땅콩이며 호두가 담긴 보자기를 놓아두고 가신다.

 

그리고 가끔씩은 잊을 만도 한 우리의 결혼기념일에도 알콩달콩 살아가라는 바람을 담아서 쫄깃쫄깃한 수제찰떡을 빈집에 놓고 가시군 한다. 자식의 평안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넣어서 만들고 또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도 못하는 이 딸에게 손수 배달까지 기꺼이 해주시고는 아마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실 것 같다. 내 새끼들이 무탈하게 잘 지낼 수 있을거라고 굳게 믿으시면서... 그리고 련락도 없이 가져다 놓은 음식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줄 자식의 모습을 흐뭇하게 그려보시면서


철따라 영채김치*며 장아찌며 매번 배낭에 담아서 가져다주시는 우리 엄마이고 지고 계단으로 5층까지 올라오시려면 정말 힘드실 텐데 내가 쉬는 날에도 엄마는 마중오라는 전화한번 안하신다. 물 한잔만 마시고는 숨 돌릴 새도 없이 어서 휴식하라고 서둘러 집에 가시는 엄마를 창문너머로 내려다본다.

 

예전에는 엄마의 키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저렇게 왜소해지셨을까? 몇 년 전에 다친 허리 때문인가 약간 구부정해보이는 엄마의 뒷모습에 나는 가슴이 울컥해난다. 어서 들어가라고 손을 흔드시는 엄마한테 내 마음을 들켜 버릴까봐 명랑한 목소리로 웃어 보이고 돌아서서는 촉촉해진 눈가를 훔친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부모님을 잘 찾아뵙지 못한다. 엄마는 되려 나한테 오전에는 등산하고 오후에는 친구들이랑 여러가지 명목을 핑계 삼아서 외식도 하고 신나게 놀면서 매일 명절처럼 보내니깐 아무 걱정말라고 하신다.

 

혹시 아주 오랜만에 고기라도 사들고 가면 엄마는 이것저것 내어주시느라 바쁘다. 김장김치는 물론이고 감자며 색다른 과일이며 하다못해 양파 두 알까지 꾸역꾸역 넣어주신다. 갈 때는 쇼핑백을 들고 멋스레 가지만 돌아올 땐 너무 무거워서 아버지께서 꼭 짐꾼으로 따라나서야 될 정도이다. 량손에 보따리를 한껏 든 시골 아줌마가 따로 없지만 마음만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영락없는 철부지가 되어버린다.


살그머니 음식만 놓고 가시고는 내 반응이 궁금하실 엄마께 장황하게 인사하는 건 내가 엄마한테 하는 효도중의 한가지다. 엄마도 나의 조금은 과장된 듯한 음식에 대한 평가를 싫지 않아하는 눈치이며 못내 기다리시군 한다.

"로명화씨 어쩌면 이렇게 맛있게 만들수 있나요?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간이 딱 맞네요. 대장금이 왔다가 울고 갈 정도예요. 정말 잘 먹었어요."


잔뜩 흥분된 나의 하이톤에 수화기너머로 차분하지만 즐거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엄마는 번마다 이렇게 말씀하시군 한다.

"자식한테 해주는 건 신이 나고 기분 좋은 일이야. 아직 젊고 건강할 때 힘 닿는 대로 많이 만들어주고 싶어. 너도 네 자식한테 해줄 때 정말 즐겁지? 내 마음도 똑같아. 자식은 아무리 나이 먹어도 부모의 눈에는 언제나 주고 싶기만 한 존재야."

고기랑 야채가 적당하게 배합이 잘 된 엄마표 만두를 입에 넣으면서 나는 엄마의 사랑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것이며 나는 영원히 엄마의 마음을 다 알수는 없는 거구나 다시 한 번 깊이 느낀다.


래일 아침에는 남은 물만두를 노랗게 구워 먹어야겠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나도 엄마처럼 우렁각시가 한 번 되어보고저 한다. 등산가신 틈을 타서 부모님이 즐겨 드시는 곶감이며 과일이며 고기를 푸짐하게 사 놓은 채로 몰래 숨어있어야겠다. 집에 돌아오신 부모님께서 우렁각시가 도대체 누구일까며 물동이속을 들여다보시면서 행복한 고민을 하고 계실 때쯤 "바로 당신들 딸입니다." 짠하고 나타나야겠다고 다짐했다.

 

 

* 영채김치 : 임금님 수랏상에도 올랐다는 김치, 연변, 북한 사람들이 담가 먹는 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