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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백년편지] 민영환 선생을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이혜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문의 : 02 -733-5027】


  2016.07.11.(월) 맑음

여름 햇볕이 무겁다. 종로 3가에서 낙원상가 쪽으로 걸어 인사동 길로 들어갔다. 쌈지길 골목으로 들어가면 ‘민영환 선생 자결터’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찿아나선 길이다. 주소대로 찾아갔으나, 한창 공사 중인지 주변이 어수선하다.


여름 햇살에 목이 바짝바짝 탄다. 그 건물에 있는 작은 커피집에서 까페라떼를 주문하여 들고 나왔다. 한 바퀴 더 돌아봐야겠다는 심산이었다. 왼쪽으로 공사장을 끼고 크게 한 바퀴 돌아본다. 순화궁터 표지석만 보인다.


낙망하는 맘이 든다. 역사는 뒤안길로 넘긴 채, 인사동 번화가로 다시 들어선다. 걷다 보니, 관광 상품점이 보인다. 쇼 윈도우 물건들이 다채롭다. 인사동은 언제나 화려하다. 물건 구경 보다 햇볕을 피해 시원한 실내로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자개로 만든 보석함이며 가방들이며 자수정 팔찌와 목걸이 등……. 다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물건에 맘을 빼앗긴 채 민영환 선생을 잠시 잊어버렸다. 결국 작은 찻잔 몇 개를 사들고 나와 다시 따가운 햇살 속을 걸었다. 인사동은 상점들마다 혼을 빼놓는 것 같다. 오른쪽 골목에 ‘쌈지’라는 간판이 보인다. 다시 그 골목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더위를 먹더라도 골목을 한 번 더 뒤져봐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저만치 기와지붕이 보인다. ‘인사동관광안내소’라고 되어있다. 그곳에서 일러준 대로 건물 몇 개를 지나니 몇 시간 전에 카페라테를 샀던 카페 앞에 ‘민영환 선생 자결터’가 명징하게 건재하고 있다. 

   

커피를 주문하면서도 커피집 청년에게 물었었다. 그 청년은 모른다고 했던 바로 그 커피집 앞에 ‘민영환 선생 자결터’는 있었다. 투명 유리문 바로 앞이다. 대리석 기단 위에 한옥 격자문양 문짝처럼 생긴 기념물이 서있다. 대나무 문양이 문짝 아래 부분에 부조로 장식되어있다. 민영환 선생이 자결할 때 입고 계셨던 옷, 견장의 수술과 모자, 긴 칼 등이 문짝 앞에 누워있다. 빛바랜 청색 주조물이다.


언뜻 보면 뼈만 앙상한 시신으로 보이지만, 충정공의 의관이다. 바로 앞에 두고도 그 옆으로 지나쳐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었다. 인사동을 몇 바퀴 돌고 나서야 겨우 발견했다. 눈앞에 보물도 마음으로 보아야 보물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민영환 선생은 그렇게 인사동 번화가 속에서도 찾고 싶으나 쉽게 눈에 뜨이지 않은 채, 젊은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슬펐다.



민영환 선생 동상

오후에 전철을 타고 다시 인사동 조계사로 갔다. 어제 공부를 하다 보니, 그의 집터와 동상이 조계사 부근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름 햇살이 험악하다. 조계사로 들어서는 순간, 작은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와 연꽃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절 마당에는 연꽃이 가득하다. 노란 미색, 연분홍색, 진분홍색 봉우리, 넙적하고 둥근 연잎이 마당을 꽉 메우고 있다. 도심 속에서 이런 자연을 대하니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절 마당 오른편으로 ‘우정총국’의 옛 모습이 보인다. 그 뒤뜰 구석에 민영환 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6각형 기단 위에 옛 관복차림의 동상이다. 기골이 장대한 장군의 모습은 아니다. 꼼꼼하고 세심할 것 같은 인상의 날씬한 얼굴을 갖고 있다.

‘그래서, 민영환 선생은 고종의 특사로 러시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을 다녀오기 위해 출정했던 204일의 대장정을 매일매일 일기로 기록했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격이 소탈하고 대충대충 사는 사람들은 일기를 쓰면서 매일 매일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계사 경내에 있다는 설명만 믿고 그의 집터를 찾았으나,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경내를 구석구석 돌아보다가 주차장 관리인에게 물었더니, 조계사 정문 길가에 있다는 것이다.


민영환 선생 집터 표지석


그랬다. 오토바이며 버스, 택시 들이 쌩쌩 달리고 있는 아스팔트 길옆에 ‘민영환 집터’가 있었다. ‘전의감 터’와 ‘도화서 터’가 왼편으로 나란히 놓여있다. 전의감이라면, 궁궐에서 쓰는 약재와 의학 재료 등을 다루던 곳이다. 도화서라면 궁궐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고 관장하던 곳이다. 창덕궁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었다는 뜻이리라. 그만큼 민영환 선생은 궁궐과 밀접한 연관-궁의 영향력을 받는 사람이었다. 태생부터.

민겸호의 장남이었으나 민태호에게 입양되었다고 하는데, 그곳이 민태호의 집터였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내일은 그가 남겼다는 ‘해천추범’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2016.07.15.(금) 흐리다가 저녁부터 비

마을버스를 타고 종로도서관에 가서, ‘해천추범’을 빌렸다. 책을 손에 넣으니 세계를 손에 넣은 것 같은 느낌이다. 120년 전이라는 시간도 손에 넣은 것 같다. 민영환 선생이 1896년에 러시아로 떠날 때는 윤치호, 김득련, 김도일, 손희영, 스테인 등과 함께 떠났었다. 그 일행 속에 끼어 함께 시간과 공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음력 날짜와 날씨까지 상세히 적어 넣은 일기문. 그가 을사늑약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자결한 이유를 알 것 같다.


2016.07.18.(월) 하루 종일 흐림.

그에겐 ‘충정공’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2호선과 5호선전철이 교차하는 충정로역을 지날 때에도, 서대문에서 아현동으로 가는 길에 충정로 거리를 지날 때에도 민영환 선생의 시호를 따서 붙여진 거리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곤 했다.

“이제 기억하겠습니다.” 충정로역에서 전철을 타거나, 그 앞을 지나갈 때만이라도 충정공 민영환 선생을 기억하겠습니다. 민영환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인사동 자결터, 조계사에 있는 동상, 그의 저서[해천추범]을 읽고 나서야 100여 년 전 충정을 다했던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저서 [해천추범]이 일기형식으로 되어있기에 나도 일기를 써본다. 잊지 않으렵니다. 민영환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