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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효창공원에 잠든 삼의사는 누구인가?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용산구 효창공원은 서울 한 복판에 해당하지만, 조선시대에는 한적한 시골이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조선 후기 마지막 개혁군주였던 정조가 자신의 맏아들이었던 문효세자의 무덤을 쓰고 이곳을 효창원이라고 불렀다.


문효세자는  1782~1786까지 살다가 갔다. 그의 나이 겨우 5살이었다. 아마도 당시 어린 문효세자가 홍역같은 전염병을 앓다가 간 것이 아닌가 싶다.  귀하고 귀한 왕자였고,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을 잃은 정조의 안타까움이 얼마나 컸을 지는 짐작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정조는 아들을 자주 찾아보고 싶었던지 어린 아들의 무덤을 궁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 쓰고 이를 효창원이라 불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조선이 패망한 뒤, 일제강점기 마지막 시기인 1944년, 일제는 이곳을 공원화 하기 위하여 효창원에 모셔져 있던 문효세자의 무덤을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의 한 편으로 이장하였고, 지금은  '효창원'에서 유래한 '효창공원'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 사연 깊은 이곳은 해방된 뒤, 새로운 묘역이 되었다. 서울의 중심인 이곳에 일제강점기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겠다며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고 죽어간 선열들의 묘역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효창공원에는 백범 김구선생의 묘역과 임시정부 요인을 모신 묘역 그리고 이곳에 모셔진 분들의 영령을 모신사당 의열사(義烈祠)가 있다.  효창공원내 사당인 의열사에는 임시정부주석 김구, 임정요인으로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그리고 삼의사인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이분들의 묘역도 3군데에 조성되어 있다.


오늘은 효창공원내 모셔진 선열들의 묘역 중 삼의사의 무덤을 찾아보았다. 삼의사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로, 이봉창의사는 대한애국단에 가입하여 상해에서 김구선생과 함께 일왕 암살계획을 세워 1932년 1월 8일 동경 사쿠라다문에서 열병을 마치고 나오던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명중시키지 못하고 붙잡혀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그리고 윤봉길의사는 1930년 망명길에 올라 만주를 거쳐 상해에 도착하여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천장절(일왕생일)에 축하기념식에 참가한 일본 시라카와 대장을 비롯한 많은 요인들을 암살과 중상을 입혔으며 그해 12월 19일 순국하였다.


 그리고 백정기의사는 무정부주의자 연맹에 가입하여 노동운동과 일본상품 배격운동에 참가하고 일본시설물 파괴공작과 요인암살 친일파 숙청에 투신하여 항일운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1933년 홍구공원 육삼정연회에서  일본주중공사 아리요시를 습격하려다 붙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6월 5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삼의사의 묘역에는 3기의 무덤과 1기의 빈 묘가 있는데, 이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사의 빈묘이다. 안중근의사까지 합하면 4인의 묘역이지만, 안중근의사의 묘역은 빈묘이기에 그 수를 3기로 쓰고 있다. 안중근의사의 시신을 묻은 곳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그의 묘역을 발견한다면, 바로 이곳에 모실 것이다. 그리고 삼의사의 묘역은 사의사의 묘역이 될 것이다.


효창공원내 모셔진 삼의사의 묘역을 돌아보니, 뜨겁고 습한 삼복더위지만, 국가방위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지도자들의 잘못만을 탓하지 않고, 한낱 백성으로 자신의 귀중한 목숨을 초개처럼 던졌던 의사들의 마음에 차마 덥다는 말을 하기도 힘이 들었다.


이렇게 의롭게 살아가신 분들이 계셨기에 한국은 늦게나마 다시 독립할 수 있었고,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며, 이렇게 살다가신 분들의 기운을 이어받아, 사리사욕에 나라를 망치는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국정농단을 할 때, 백성들은 깨어나 촛불을 들고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일어났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님들은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지만, 그 정신만은 영원히 남아 후손들이 나라를 바로지키는 정신적 힘이 될 것이며, 그 정신을 교육시키는 곳이 바로 효창공원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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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