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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은 조문기 지사가 부민관에 폭탄 던진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0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이 땅의 독립운동가에게는 세 가지 죄가 있다. 통일을 위해 목숨을 걸지 못한 것이 첫 번째요.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요. 그런데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세 번째다.” 이는 애국지사 조문기 선생이 생전에 한 말입니다. 조문기 지사는 광복 직전인 1945년 오늘(724) 유만수강윤국 지사와 함께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라는 친일어용대회를 여는 서울 부민관(府民館)에 폭탄을 터뜨려 집회를 무산시켰습니다.

 

1927519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조문기 지사는 19435월 일본 가와사키[川岐]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일하는 한국인 노무자 3,000여 명이 참여한 '조선인 멸시 규탄 파업'을 주도하였지요. 이후 국내로 들어와서는 유만수우동학 동지와 함께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결성하여 국내에서 대일(對日) 투쟁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대한애국청년당을 재결성하고, 인민청년군을 조직하여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한 활동을 펼쳤지요. 19486월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저항하여 인민청년군 사건을 일으켰고, 이 일로 16개월의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한 뒤에도 1959년 이승만 대통령 암살 및 정부전복 음모 조작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1999년부터는 친일인명사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친일파 청산에 앞장섰지요. 200825일 세상을 뜬 조문기 지사는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하는 겨레장 형식으로 장례가 치러졌으며,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