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5월 19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조문기 지사는 1943년 5월 일본 가와사키[川岐]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일하는 한국인 노무자 3,000여 명이 참여한 '조선인 멸시 규탄 파업'을 주도하였지요. 이후 국내로 들어와서는 유만수ㆍ우동학 동지와 함께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결성하여 국내에서 대일(對日) 투쟁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대한애국청년당을 재결성하고, 인민청년군을 조직하여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한 활동을 펼쳤지요. 1948년 6월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저항하여 인민청년군 사건을 일으켰고, 이 일로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한 뒤에도 1959년 이승만 대통령 암살 및 정부전복 음모 조작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또 1999년부터는 친일인명사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친일파 청산에 앞장섰지요. 2008년 2월 5일 세상을 뜬 조문기 지사는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하는 겨레장 형식으로 장례가 치러졌으며,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