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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백제 때부터 물을 다스렸던 김제 벽골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사적 제111호로 지정된 김제 벽골제를 다녀왔다. 벽골제는 역사기록에 따르면, 백제 비류왕 27년(330년) 김제평야에 벼농사를 짓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제방을 쌓아서 생긴 뚝이다. 제방을 쌓아 제방 위는 거대한 저수지가 되고, 제방 아래는 거대한 농토가 되게함으로써 김제평야는 벼농사를 마음 놓고 지을 수 있었고, 백제는 더욱 풍요로운 곡창지대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벽골제는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에 제방을 늘려 쌓았고, 고려와 조선조에도 여러차례 수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세종 2년(1420)에는 폭우에 제방이 부분 유실되고, 저수지는 강물에 떠내려온 흙들이 싸여 차츰 그 기능을 상실해 갔다. 거대한 저수지 내부에 쌓여가는 토사를 파내지 못하니 물의 양이 줄어들어 저수지 기능이 떨어진 것이다.


이런 벽골제는 현재 3km에 이르는 제방이 남아있고, 수로에 설치되었던 5개의 수문 중 현재는 장생거와 경장거로 추정되는 수문지만 남아있다.


한편 일제강점기에는 메워진 저수지를 준설하지 않고, 논과 밭으로 활용하게 하였고, 제방의 뚝을 이용하여 수로만이 남게 되었다. 그 이후 벽골제는 저수지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없어지고, 제방의 흔적만이 남게 되었다. 이런 물다스리던 옛 유적은 그 규모가 1975년 발굴조사에 의하여 밝혀졌는데, 제방의 높이는 4.3m 밑변너비는 17.5m 윗변너비는 7.5m 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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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