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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윤봉길의사의 유품 회중시계는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문화신문= 윤지영 기자] 윤봉길의사가 남긴 유품 가운데 회중시계가 있다. 보물  제568-2호로 지정된 윤의사의 시계는 멈췄지만, 그의 정신은 멈추지 않고 우리 겨레의 시계로 영원히 살아있는 것은 아닐까?


윤봉길의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태어나, 덕산보통학교와 오치서숙에서 공부하였고 19세 때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다. 20세 때 각곡독서회를 조직하고 『농민독본』을 편찬했으며, 22세 때 월진회를 조직, 농촌운동을 정열적으로 전개하였다. 윤봉길의사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때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1년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그 뒤 항일 투쟁을 계속하다가 1932년 4월 29일 혼자 일본의 상해사변 전승축하회가 열리던 상해의 홍구공원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총사령관 시라가와 등 일본의 군수뇌부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군법재판 단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일본으로 이송되어 1932년 12월 19일 일본 오사카 위수 형무소에서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윤봉길의사가 남긴  유품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139번지 충의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목록은 다음과 같다.

1.회중시계 : 상해(上海)의 홍구공원(虹口公園)으로 떠나는 날 아침 김구(金九) 선생과 바꾸어 찬 낡은 시계인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몸에 지닌 유품(遺品)이다 지름 5㎝, 줄길이 30㎝, 두께 1㎝, 스위스제(製)이다.


        ▲ 윤봉길 의사 유품 지름 5, 줄길이 30, 스위스제() 회중시계(보물 제568-2)


2.윤봉길의사 유품-지갑부중국화폐(尹奉吉義士 遺品-지갑附中國貨幣)는 중화민국건국기념폐인 1원은화 3개, 광서원보인 칠전이분 1개, 이십원지폐인 2각화폐 1매, 이십원동전인 2박주전 5개가 있으며, 지갑의 크기는 가로 7㎝, 세로 11.5㎝이다.

3.윤봉길의사인(尹奉吉義士 遺品-尹奉吉義士印)은 골각에 ‘윤봉길신’이라 새긴 것으로 홍구공원에서 거사를 치를 당시의 몸에 지니고 있던 유품이다.

4.윤봉길의사 유품(尹奉吉義士 遺品)-손수건은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킨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의사가 남긴 유품들 가운데 하나인 손수건으로 홍구공원에서 거사를 치를 당시에 몸에 지니고 있던 유품이다.

5.윤봉길의사 유품-안경집(尹奉吉義士遺品 - 眼鏡集)은 홍구공원에서 거사를 치를 당시에 몸에 지니고 있던 유품으로, 사다리꼴의 형태로 되어있다.

6.윤봉길의사 유품-일기(尹奉吉義士 遺品-日記)는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킨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의사가 남긴 유품들 가운데 일기이다. 이 일기는 윤봉길의사가 직접 묵으로 쓴 것으로, 각 11행이며 27매 1책으로 되어있다.

7.윤봉길의사 유품-월진회창립취지서(尹奉吉義士 遺品-月進會創立趣旨書)는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킨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의사가 남긴 유품들 가운데 하나로, 윤봉길의사가 월진회를 창립하면서 직접 묵으로 쓴 문서이다.

8.윤봉길의사 유품-농민독본(尹奉吉義士 遺品-農民讀本)은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킨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의사가 남긴 유품들 가운데 하나로, 어린아이들에게 글을 깨우치고자 펴낸 농민계몽서이다. 교과서 제1권 8과, 제2권 7과로 되어있으며, 2권 모두 프린트한 것이다.

9.윤봉길의사 유품-형틀대(尹奉吉義士 遺品-刑틀臺)는 1932년 12월 29일 일본대판위수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할 때 윤봉길의사를 묶어 세웠던 것이다.

10.윤봉길의사 유품-편지(尹奉吉義士 遺品-便紙)는 이 편지들은 총 4통으로 되어 있으며, 충의사에 보관되어 있다.


<자료: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