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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동학혁명의 선봉장 전봉준장군의 옛집을 찾아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난, 동학교도들를 중심으로 한 농민군들은 전봉준장군을 중심으로 오합지졸 같은 농민군을 재편하였다. 전봉준은 당시 특별한 군사교육을 받은 바도 없었지만, 타고난 지도력으로 다른 지도자들의 만장일치 추천으로 최고의 지휘관이 되었다.


동학혁명이 발생하기 전, 전봉준은 정읍(옛 고부군) 이평면 장내리 현재 복원한 생가터에 소작농으로 살았다. 다른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소작농으로 근근히 살아가면서도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학문을 바탕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훈장도 하면서 간단한 처방의 한약사도 했다. 그러나 그 삶은 궁색하기 그지 없었다. 일찍 병으로 아내를 보내고, 얼마 안있어 아버지 전창혁마져 고부관아로 끌려가 태장(매맞는 형)을 맞은 것이 병이되어 결국 죽고 말아 한맺힌 삶을 어린 아이들과 하루하루 버겁게 살아야 했다.


조선 후기 당시 농민들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정읍 전봉준 옛집은, 동학혁명의 실패로 폐가가 되어 사라졌던 것을 최근 동학혁명이 재조명되면서 전봉준장군의 옛집도 이렇게 복원되었으나, 그의 가옥을 복원한 사람은 아이러니 하게도 10.26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이후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무력으로 짖밟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라고 한다. 


전두환이 보기에는 5.18 광주민주항쟁의 희생 위에 들어선 군사정권이기에 자신의 집권이 국민의 피를 발판으로 이루어진 것을 조금이나마 무마하기 위해서 90여년 전에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을 다시 보게하고 전봉준장군의 생을 되살려 자신의 오명을 대신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아울러 그가 고려했던 것은 전봉준과 같은 전씨였기에 더욱 관심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전봉준 옛집은 당시 평범한 사람들이 살던 한국 남쪽지방 농가의 배치구조로 건물의 배치는 안채와 헛간채로 구성된 집이었으며, 그의 집에는 가재도구는 당시에 전봉준장군이 썼을 만한 것들로 최소한으로 갖추어져있고, 방에는 그가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찍힌 사진만이 걸려있었다. 죽으러 가는 사람이지만 전혀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아닌 형형한 눈빛을 보이고 있다. 마치 도를 깨친 초연한 철학자인양 날카롭고 이글거리는 눈빛은 그를 끌고가는 형리들을 오히려 질리게 했지 않았을까?.


오늘날 한국의 민주화가 이만큼이나마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불의와 폭정이 판치는 나라의 백성은 집권자의 종이 아닌 바로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을 일깨웠던 동학혁명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고, 현행 한국의 헌법전문에 쓰여 있다. 


백성이 주인임을 일깨우고 그 실현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그 최선봉에서 싸우다 잡혀서 짧은 생을 마감한 전봉준장군의 생가를 돌아보며 역사를 생각해 보았다. 역사속에 오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주인이 주인노릇을 포기하면 종이 되기 쉽상이고, 주인의 손에 뽑힌 사람들이 오히려 주인행세를 하게 된다는 사실, 바로 오늘 우리가 깊이 깨달은 현실정치의 교훈이 아닌가 싶다.


전봉준은 1855년 태어나 1894년까지 짧은 40년을 살다 갔지만, 동학을 통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사상과 그 사상을 바탕으로 그가 일깨운 인권사상은 왕만이 주인이고 백성은 종이었던 시대가 가고 국민이 바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국민주권주의 사상의 기원이 되어, 오늘 한국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었으며, 한국에 민주주의가 살아았는 동안 한국민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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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