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도 베토벤 5번 교향곡은 5명의 지휘자를 비교하면서 들어보기도 했지만 처음 강렬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앙세르메는 그 유명한 카라얀도, 푸르트벵글러도, 번스타인도 내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요. 이렇게 갑자기 서양음악 클래식 얘기를 하는 것은 한국문화에서도 어떤 음악이 어떤 그림이 으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냥 각자가 좋은 대로 느끼면 그만일 것입니다.
여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와 오원 장승업의 “호취도(毫鷲圖)”가 있습니다. 호취도는 독수리의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진한 먹과 엷은 먹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속도감 있는 필선을 보면 시각적 쾌감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호취도가 좋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세한도는 일체의 기교나 꾸밈을 버리고 오로지 거친 갈필(渴筆, 붓에 먹물을 슬쩍 스친 듯이 묻혀서 그리는 기법)로 절제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유배됐던 추사의 상황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이 두 그림을 두고 어느 것이 뛰어난 지를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