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의 풍흉에 대한 관심 때문에 처서 즈음엔 날씨에 대한 관심도 컸는데 요즘처럼 처서 무렵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고 하지요.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라고 하는데, ‘처서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라고 하거나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에 든 쌀이 줄어든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맑은 바람과 왕성한 햇살을 받아야만 나락이 제대로 익는데, 비가 내리면 나락에 빗물이 들어가고 결국 제대로 자라지 못해 썩기 때문입니다.
처서 때의 세시풍속 가운데 가장 큰 일은 포쇄(曝曬)라고 해서 뭔가를 바람이나 햇볕에 말리는 것이지요. 나라에서는 사고(史庫)에 포쇄별관이란 벼슬아치를 보내서 눅눅해지기 쉬운 《조선왕조실록》을 말리도록 했습니다. 또한 선비들 역시 여름철 동안 눅눅해진 책을 말리고, 부녀자들은 옷장 속의 옷과 이불을 말립니다. 책의 경우 포쇄하는 방법은 우선 거풍(擧風) 곧 바람을 쐬고 아직 남은 땡볕으로 포쇄(曝)를 하지요. 그런가 하면 음건(陰乾) 곧 그늘에 말리기도 하는데 “건들 칠월 어정 팔월”이라는 말처럼 잠시 한가한 처서 때 농촌에서는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수채화처럼 곱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