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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묵직한 주산 / 리정림

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13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지금 회계일은 보통 계산기로 하지만 나는 오랜 습관으로 주산으로 하는 것이 편하다. 나는 퇴직 전까지 향병원의 회계업무를 주산으로 했는데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주산은 바로 남편이 향진재정소일 그만두면서 나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 주산은 어찌 보면 남편이 순박한 사업심을 물려받은 것 같아서 남편이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주산이다. 남편이 땀과 노력 정직함과 성실함이 숨어있는 이 주산은 늘 내 곁을 지켜주었다. 퇴직하고 초빙 받은 새 회사에서 회계업무를 할 때도 이 주산으로 매달 수입, 지출, 재무분석 등 업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여 회사 일을 항상 제집 살림처럼 알뜰히 했고 회사운영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요즈음 문학공부를 하면서 이것저것 뒤지다 서랍 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이 주산을 보게 되었다. 남편이 떠나고 나서 혹시 이 주산을 보게 되면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 아픈 추억이 되살아날 것 같아 서랍 속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것이다. 이 주산은 남편이 청춘을 그려볼 수 있고 남편의 손때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유일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주산을 마주하고 보니 잊은 줄 알고 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남편은 군생활을 6년하고 복원하여 76년 상반년에 향정부(중국의 행정구역은 ()-()-()”으로 한국의 --과 같다.)에 배치 받았다. 남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처음 맡은 일이 주산으로 하는 재무일이였다. 회계전업학교를 나오지 않았지만 우선 주산사용법과 기본원리만 배우고 오로지 열정과 피타는 노력을 하였다.

 

남편은 6년 동안 땅크병(탱크병)으로 있었다. 그러다보니 주산은 매우 생소하였다. 하지만 투박한 손으로 주산알을 올리고 내리며 수많은 밤을 새며 련습에 련습을 거듭하였다. 마침내 주산 보통4증을 받았다. 이럴 즈음 평생 교육사업에 몸 담그시고 교장으로 계셨던 시아버님이 아들에게 어떤 일이든 정직하게만 하면 평생 편하게 있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해주셨다. 어찌 보면 아버님 자신 삶의 답인 것 같다. 남편은 아버님의 말씀을 명기하고 주산과 이렇게 향진재정일의 첫발을 떼였다.


욕심을 버리고 일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남편은 가난한 향정부에서 재정일 하면서 향정부의 지출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우리 집에서 손님접대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 잡은 집에 소금이 달아난다.”고 번마다(매번) 주되는 음식재료는 가져오지만 그밖에 쌀, 기름등 기타는 내 집 것이 축나고 내가 힘들었다. 그래서 투정하고 불평해도 언제한번 보태주거나 선물을 사준 적이 없다.

 

안해인 나는 잘 안다. 남편은 돈과 재물에 한눈 팔지 않고 량심의 저울눈 속이지 않고 소박하고 성실하게 일했다. 남편이 해마다 받아오는 많은 영예증서가 이를 증명해준다. 지난90년대였다. 한창 석탄이 긴장할(공급이 딸려 매우 어려운 상태) 때 향정부의 석탄을 충족하게 마련하려고 남편은 관계자들과의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한 술 한 컵에 석탄 한 톤이라 해서 제 몸을 던져가며 술을 마시였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토하다 못해 피까지 나왔다. 지쳐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리해가 되지 않았으며 몸이 망가지고 제 안속도 차리지 못하는 남편이 답답할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거짓이 없고 솔직하고 자기 일에 충실한 남편의 인간다운 모습인 것 같다.

 

남편은 주산으로 하는 재정일을 평생하면서 반듯한 집한 채 마련하지 못했고 가진 것 없고 풍족하게 살지는 못해도 시아버지 말씀처럼 마음만은 편하게는 살았다. 남편이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숨어있는 주산으로 향정부에 재정수입은 해마다 늘어났고 수입과 지출이 기본상 균형이 잡히기 시작했다. 남편의 일생이 눈부시게 찬란한 인생은 아니어도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보람 있는 일생이었다. 오늘따라 이 주산이 더 묵직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