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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시대 백성들의 집 게딱지만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3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이번 행차에 수원부를 두루 살펴보니, 새 고을의 관청은 틀이 잡혔으나 민가는 아직 두서가 없다. 그 가운데 대략 지어놓은 집이라 할 만한 것은 움막도 아니고 참호도 아니어서 달팽이 껍질 같기도 하고 게딱지같기도 하다. 지금 헤아려보건대, 집들이 즐비하고 거리가 번창하여 서울 근처의 큰 도회지가 되는 것은 짧은 시일에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정조실록14(1790) 211일 치 기록입니다. 정조 당시 민가의 모습이 게딱지같다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2004년 화성 동탄 신도시 15지점에서 발굴된 조선시대 집자리는 움막집 또는 토막집이라 불릴 정도였지요. 땅을 파서 위에 거적 같은 것을 얹고 다시 흙을 덮어 추위와 비바람만 겨우 가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까지도 많은 백성은 이렇게 허름한 집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고대광실에 살았던 사람이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라서 양반과 상놈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달랐다고는 하지만 평등사회로 들어선 오늘날도 주거공간의 차는 하늘과 땅차이임을 실감합니다. 서울 강남 도곡동의 〇〇팰리스라는 아파트는 176평이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지만 게딱지같은 내 집은커녕 1평짜리 고시원비 마련조차 어려워 쩔쩔매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게 현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