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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와 “173”이 네가 아니냐?

석화시 감상과 해설 17. 협박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78.2”“173”이 네가 아니냐?



          “1,2,3,4,5,6,7,8,9,10” 이 차례로 나와서

          “너는 수자다라고 한다

            나는 아니다라고 했다

          “22401580704***”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0433-256-2191”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78.2173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계속 아니라고 한다면

          “78.2”에서 한 “10”쯤 덜어 내겠다고 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면

          “173’에서 한 “10”쯤 낮추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허참

          “10,9,8,7,6,5,4,3,2,1”이 거꾸로 나와서

          ‘너는 수자다라고 한다

            이제는 아니다라고 못 하겠다

            그러면 영영 지워버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0.0

  





< 해 설 >


시인이 문명에 대한 회의와 비판은 기술문명의 발전에 따라 인간이 점점 왜소해지고 소외되어 설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외는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공동이 앓고 있는 치유되기 어려운 병이다. 인간의 소외는 여러 가지 양상을 띠지만 시인은 협박(1996. 11. 10) 작품39”에서 나름대로 숫자에 의한 인간의 소외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이 시는 특히 아라비아숫자의 패러디로 볼 수 있어 아주 흥미롭다.

 

패러디는 논자에 따라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를 조롱하거나 회화화시킨다는 좁은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텍스트와 텍스트 간의 반복과 다름이라는 넓은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전자의 협소한 개념이 과거 문학작품에 대한 조롱이나 경멸을 위해 씌어졌던 시적 장치로서 오랜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면 후자의 개념은 과거의 문학작품이나 관습에 되비추어 봄으로써 문학형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보다 폭넓은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

 

숫자투성이인 이 시에서 “222401580704***”은 신분증 번호이고 “0433-256-2191”은 전화번호이며 “78.2”“173”은 각각 체중과 신장임에 틀림없다. 이제 인간은 인간의 본질에 의해 인간인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수의 다양한 조합에 의한 숫자에 의해서 좌우된다.

 

신분증 번호는 인간이 고도로 짜인 사회조직 속의 한 분자일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며 체중과 신장은 나의 속성이기는 하지만 본질이 아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속성에 의해서 때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인간을 소외시키고 얽매는 사회질서, 기계문명, 비본질적인 속성 등을 시적 주인공은 애써 부정하려 하나 나중에는 어이없게도 포기하고 만다.

   

왜냐하면 “10, 9, 8, 7, 6, 5, 4, 3, 2, 1”이 거꾸로 나와서 영영 지워버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로써 인간의 삶이 상술한 것들에 의해 매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조차 없는 상황임을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허련화, “석화 시에서 보이는 패러디수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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