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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오늘은 박재혁 애국지사가 부산경찰서장을 처단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44]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박재혁(朴載赫, 1895~1921) 애국지사가 부산경찰서 하시모토 서장에게 폭탄을 던져 처단한 날입니다. 박 지사는 부산공립상업학교 학생 시절부터 강렬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항일 운동에 참여하였는데 최천택, 김병태, 박홍규 등과 함께 대한제국에서 펴낸 보통학교 국사 교과서인 동국 역사(東國歷史)를 비밀리에 등사하여 배포하였습니다. 1913년에는 최천택, 김병태, 박홍규, 오택(吳澤) 등과 구세단(救世團)을 결성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단보를 발행하여 부산과 경상남도 일대에 배포하였으며, 이러한 구세단의 활동으로 일찌감치 일제의 요시찰 인물이 되었지요.


 

1915년 부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부양하기도 했지만 19208월 의열단 김원봉(金元鳳) 단장을 만나 의열단에 입단하였습니다. 의열단은 1920년 진영밀양 폭탄 사건에서 의열단 탄압에 앞장선 부산경찰서를 응징하기로 합니다. 거사 준비 과정에서 박 지사는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橋本秀平)가 고서적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무역업을 하던 경험을 살려 중국 고서 상인으로 위장하였지요.

 

박 지사는 부산으로 잠입하는데 성공했고, 최천택, 오택 등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거사를 준비하였으며, 1920914일 고서적 상인으로 위장하고 부산경찰서로 갔습니다. 박 지사는 경찰서 2층 서장실에서 하시모토 서장에게 고서를 꺼내 보이고, 서장이 이 고서에 한눈을 파는 사이 숨겨온 폭탄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준비해 온 전단을 보이며 서장에게 자신이 의열단임을 밝히고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때 하시모토 서장은 중상을 입어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래되지 않아 죽었지요.


 

폭탄 투척 당시 박 지사도 중상을 입어 탈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박 지사는 부산지방법원, 대구복심법원과 경성고등법원을 거쳐 1921331일 사형을 최종 선고 받았습니다.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과 폭탄 투척 당시의 상처로 고통을 겪는 와중에 폐병까지 얻게 되었지만 기개는 꺾이지 않았지요. 일제에 의해 욕되게 죽지 않겠다는 결심에 단식으로 투쟁하다가 사형이 집행되기 전인 1921512일 대구형무소에서 치열한 항일운동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박재혁 지사는 1962년에 건국 훈장 국민장을 추서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