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노량진과 서울역 공사를 서둘러 1900년 7월 8일에 전 구간을 개통시켰고, 11월 12일에 서대문에서 개업식을 가졌습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걸어서 가면 12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1시간 40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요. 경인선 철도의 객실은 3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외국인만 탈 수 있었던 1등 객실 요금은 1원 50전, 2등실은 80전이었고, 3등실은 40전을 내야 했습니다. 그때 80전이면 달걀 100개를 살 수 있었고, 40전으로 닭 2마리 값과 맞먹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비싼 요금 탓에 손님이 적었다고 하지요.
여기서 우리는 경인선 철도 개통의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899년 9월 18일 아침 9시 고요했던 조선에 철마가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외국인들 특히 일본인들이 개항장 인천을 통해 서울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숨통을 터 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철도 개설은 장차 일본이 한반도 식민지 지배를 보다 쉽게 하는 신호탄이 되었던 것입니다. 경인선을 비롯해서 이후 개통된 경부선 등 철로는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기 위한 교두보였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