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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품위와 당당함을 느끼게 한 김수연의 춘향가 초앞대목

[국악속풀이 33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2017913(수요일) 저녁 730, 서울 삼성동 소재 한국문화의 집(Kous)에서 열렸던 <김세종제 판소리보존회> 정례 발표회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이 보존회는 성우향의 뒤를 이어 김수연이 이끌고 있으며 문화재 종목의 전승과 보급 활동의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무대라는 점, 각 단체에서도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야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이 날의 발표회는 김수연 명창과 소속 회원들이 중심이지만, 서영호의 아쟁산조, 판소리 예능보유자 신영희 명창의 <김소희제 춘향가>, 왕기석 일행의 <흥보가 중 화초장>대목의 창극도 곁들여진 발표회였다는 점도 아울렀다.

 

그뿐만이 아니라 판소리 제곡(諸曲)들은 여러 명창들에게 전해지면서 각각의 특징이 실리고 첨삭되어 더 세련된 모습으로 후대에 이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김세종제 춘향가>는 이전의 송흥록으로부터 비롯된 동편제 소리를 더욱 가다듬었다는 점, 김세종제의 춘향가는 김세종, 김찬업, 정응민과 같은 뛰어난 명창들이 짠 것인 만큼, 옛날 명창들의 더늠이 고루 담겨 있고, (調)의 성음이 분명하며 부침새, 시김새가 교묘하고, 사설도 잘 다듬어져 있는 소리제라는 점도 말했다.

 

이어서 정노식이 쓴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는 김세종이 송우룡, 박만순 등과 함께 동편에 속한 대명창으로 신재효 문하에서 다년간 지침을 받아 문견이 고상함에 다른 광대에 비할 바가 아니고, 문식(文識)이 넉넉하고 창극에 대한 이론과 비평은 당세 독보적인 존재로 자타가 인정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김세종제 춘향가 발표회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한다.

 

당일 발표회는 예상한바 그대로 대 성공이었다. 수요일 저녁시간임에도 몰려든 관객으로 인해 좌석은 시작시간 30분전에 이미 매진이었고, 일찍 자리를 잡은 관객의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흔히 다른 발표회를 가보면, 출연자의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이리저리 떠들고 다니거나, 또는 단체 관람을 위해 동원된 듯한 어린 학생들이 극장 안을 헤집고 다니면서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번 김수연의 발표회에서는 관객들이 매우 정숙한 분위기를 유지해 주었다는 점이 남달랐다고 하겠다.

 

이번 발표회의 제목은 해설이 있는 김세종제 판소리춘향가 발표회였다. 그래서 시작 전에 필자는 “<판소리>란 무엇이고, <김세종제 춘향가>란 무슨 말인가?” 하는 점을 해설하였다. 이때에도 관객은 조용한 가운데 집중하며 필자의 해설을 경청하는 태도에서 그들의 교양수준을 짐작할 수 가 있었고, 이어서 춘향가의 시작부분 "호남좌도 남원부는 옛날 대방국이라 허였겄다" 로 시작되는 아니리 대목을 함께 읽을 때나 그 다음 중중모리 장단에 얹어 부르는 기산영수 별건곤 소부 허유 놀고부분의 사설을 해설할 때에도 열심히 경청하는 태도에서 관객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실 판소리나 경기지방의 긴소리, 가곡이나 가사, 시조와 같은 장르의 노래들은 노랫말이나 사설의 이해가 감상의 성공요인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김수연 명창이 무대에 나와 초앞을 불러 줄 때에도 해설을 통해 이미 사설의 내용이나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관객들은 김 명창이 안내하는 소리의 세계 속으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쉽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단가(短歌) 가운데서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로 시작되는 <사철가>를 부르고 나서 본격적으로 춘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단가란 글자 그대로 짧고 간단한 노래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흔히 판소리 한 대목이나 그 이상의 대목, 또는 완창을 하기 전에 간단한 단가 한마디를 부름으로 해서 몸 상태나 기분의 조절, 특히 목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를 시작하기 전, 충분히 몸을 풀거나 다리, 발 등을 위한 준비운동을 하는 경우와 같은 과정이라 하겠다. 짧은 시간 간단한 노래를 부름으로 해서 이를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인 셈이다.

 

5분여 단가를 부르고 난 뒤 그는 김세종제 춘향가의 시작부분 호남좌도 남원부 ---”와 중중모리 장단으로 부르는 기산영수 별건곤 소부 허유 놀고를 본격적으로 불러 주었다.

 

기산(箕山) 영수(潁水) 별건곤(別乾坤)이란 말은 판소리뿐 아니라 각종 노랫말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겠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고 부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확인하는 뜻에서 다시 한 번 설명하면 기산은 중국 하남성에 있는 높고 깊은 산의 이름이고, 영수는 그 근처에 있는 맑은 강의 이름이다. 이러한 깊은 산과 맑은 강가에서 소부나 허유와 같은 선비들이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고 해서 별건곤, 곧 별천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허유는 어떤 선비인가? 요임금으로부터 임금자리를 맡아 달라는 청탁을 받자,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며 영수강에 가서 귀를 씻었는데, 마침 소부 선비가 소를 끌고 가다가 소가 물을 마시려고 강으로 들어가자 허유가 귀를 씻은 물이라고 소에게 먹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판소리를 듣기 전에, 화면으로 사설 부분을 읽어보기도 했고, 사설의 의미를 이해하고 난 뒤여서 그런지 관객들의 반응은 보통 때와는 전혀 달랐다. 김수연 명창이 불러주는 소리 하나, 하나, 아니리 대목의 대화, 그리고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하면서 펼치는 발림 등 판소리의 기본적인 구성요소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위에 소리가 얹힐 때마다 관객은 추임새를 넣어가며 그가 안내하는 소리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수연의 소리는 공력이 물씬 풍겨 남다른 품위와 당당함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그가 판소리를 사랑하고 있고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에 느껴지는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의 인기가 더더욱 높아만 가는 것은 그의 소리가 다른 명창들과는 또 다른 빛깔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김수연의 무대가 끝나고 그가 가르치고 있는 어린 꿈나무들의 무대가 이어졌고, 수제자인 강경아의 <이별가>도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이어진 순서는 서영호의 서용석류 아쟁산조였다.


 

아쟁은 원래 개나리 활대를 줄에 문질러 내는 찰현악기(현을 활로 마찰해서 소리를 내는 현악기)의 한 종류로 궁중음악의 연향이나 제향에 주로 쓰여 온 악기이다. 그래서 아쟁의 체재는 거문고나 가야금보다 더 크고 굵은 줄을 사용하며 낮은 음역을 담당하는 악기였다. 이러한 악기가 민속음악에 쓰이기 시작하면서 악기의 체제도 작아졌고, 가는 줄을 사용하면서 음역이 높아졌고 개나리 나무 활대가 아닌 말총을 사용하는 아쟁으로 고쳐진 것이다.

 

특히 줄을 문질러 낼 때의 애처로운 음색은 비극적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적합하다. 그래서 여성국극이 성행할 때에 반주음악에 이 아쟁이 활용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산조음악도 연주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국극의 반주음악을 담당하던 악사들이 재래의 아쟁을 축소하고 개조하여 처음 창극에 도입, 활용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