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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독도에 넘실거리던 ‘강치’, 다 어디로 갔나?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86]
[서평] 신아연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책과나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강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바다사자의 하나입니다. 한 때 그런 강치가 독도에 넘실거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가지도 강치를 일명 가지라고도 하였지요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강치가 독도에 넘실거렸다? 독도에 강치가 넘실거렸다는 것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독도에 넘실거리던 그 강치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간 거야?”라며 고개를 갸우뚱 하시겠지요. 일본이 1905년 독도를 강제로 자기네 영토로 편입한 후, 일본 어부들이 독도의 강치를 무수히 학살하였습니다. 강치의 가죽이 돈이 되었거든요. 당시 강치 한 마리 값은 황소 열 마리 값에 필적하였다는군요.

 

1905년 이후 약 8년 동안 일본어부들이 학살하고 잡아간 강치는 무려 14,000여 마리나 된다고 합니다. 일본어부들은 강치가 줄어들자 강치를 확실히 잡기 위해 아기 강치를 먼저 잡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동작이 굼뜬 아기 강치를 먼저 잡으면 아기를 구하러 어미가 올 테고, 그럼 손쉽게 어미 강치까지 잡는 것이지요. 쪽바리 아니랄까봐 그런 비열한 방법까지 쓰다니... 일제 강점기 이렇게 독도의 강치를 잡아대니 결국 독도의 강치는 멸종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독도에서는 강치를 제대로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아연 작가가 이런 독도 강치의 슬픈 멸종사를 알고는 강치의 슬픔과 분노를 강치의 바다라는 소설로 펴냈습니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일본어부의 잔혹한 학살에서 신작가는 학살 부분의 이야기에 소제목을 홀로코스트라고 붙였네요 -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어린 남녀 강치(명이와 자연)가 일본 어부들의 마수를 피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헤엄쳐 가다가 기진맥진하여 죽기 직전 호주 포경저지선에 의해 구조됩니다.


호주 포경저지선이 주로 저지하려고 하는 것도 일본의 포경선이지요? 하여튼 이렇게 구조된 명이와 자연은 호주의 테마파크 씨월드에서 관객들에게 쇼를 보여주며 편안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둘은 일본 어부들에 의해 그들의 부모가 학살되던 장면, 수없이 죽어가는 강치들의 피로 독도의 바다가 붉게 물들어가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명이는 쇼를 잘 하다가도 빨간 색만 보면 평정심을 잃어버리곤 하였습니다.

 

생사고락을 같이 한 명이와 자연이 부부로서 한 몸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그리하여 둘 사이에서는 사랑스러운 아들 생명이 태어납니다.

 

자신들이 태어난 독도를 결코 잊지 못하는 명이는 - 자연이는 그 전에 끝내 인간에 대한 한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 주저하는 생명이를 독도를 찾아가라며 바다로 돌려보냅니다. ‘생명이 여자친구 ‘LOVE’도 생명이의 뒤를 따라나서고요. 그리하여 이들은 몸짓이 커지면서 씨월드에서 바다로 돌려보내졌던 친구 혹동고래 은근이의 도움을 받으면서, 끝내 명이와 자연이 떠난 이후 강치가 사라진 독도로 돌아옵니다.

 

이들만 등장하여서는 소설이 좀 심심하겠지요? 신 작가는 여기에 그냥이라는 침팬지를 저널리스트로 등장시키고, - 신작가가 그냥의 모습으로 소설 속에 들어간 것 아닐까? - 인간으로서는 푸른 눈동자라는 동물 대화가(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등장시켜 소설에 살을 붙이고 아기자기하게 이야기를 펼칩니다. 강치의 바다! 신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저로서는 무심했던 강치에게 따뜻한 연민의 감정이 생깁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동물이다 보니, 읽으면서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신 작가는 시작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동물은 인간과 생명을 나눠 가진 존재이며, 인간과 동물은 불가분하게 생명그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생명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이 소설은 생명의 존엄성과 그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끝없는 인간의 탐욕으로 희생된 강치들과 모든 동물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며 옷깃을 여밉니다.”

 

고개를 숙이며 옷깃을 여민다... 그렇군요. 평소에 신 작가에게 보이던 생명 존중 사상이 이런 소설로 나타난 것이군요. 생명그물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네요. 우리 모두는 생명그물로 연결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생명그물 어느 한쪽에서 그물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면 그 반대쪽 어느 그물에서도 고통을 당합니다. 그래서 박노해 시인은 이렇게 말하지요.

 

지구 마을 저편에서 그대가 울면 내가 웁니다.

누군가 등불 켜면 내 앞길도 환해집니다.

내가 많이 갖고 쓰면 저기서 굶주려 쓰러지고

나 하나 바로 살면 시든 희망이 살아납니다.

 

일본어부들이 독도의 강치를 학살하였다고 하니, 미군 폭격기가 독도를 폭격하던 것도 생각나는군요. 2차 대전 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독도를 은근슬쩍 일본으로 넘겨주려던 미국은 625 전에 독도를 자신들 폭격 연습장으로 사용하였지요. 미군은 한국 어부들의 생사에는 관심도 없기에, 일본에서 폭격기가 발진하여도 한국에는 아무런 통보도 안 했습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모르고 평화롭게 독도 앞바다에서 조업을 하던 한국 어선들은 갑자기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맞고, 강치처럼 독도 앞바다의 고혼이 된 것이지요.


   

지금 울릉도 통구미 바닷가에는 강치가 돌아오기를 염원하여 강치의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원래 독도에 세워야 할 것이나 일본과의 마찰을 우려하여 울릉도에 세웠다나요? 울릉도의 해변에 붙박여 있는 강치가 바다로 훌쩍 뛰어들어 독도의 바다로 헤엄쳐 가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리고 독도의 바다로 돌아온 생명과 LOVE에게서 태어난 자손들이 독도의 바다를 넘실대는 꿈을 꿔봅니다. 신아연 작가의 소설 <강치의 바다>!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