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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승지 이시원, 돗자리 짜서 생계를 꾸리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5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화도는 예부터 왕골로 꽃무늬를 수놓아 짠 돗자리인 화문석으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그런데 강화도에서 화문석을 짜기 이전에 이미 흑백자리가 나왔고, 심지어 순조 무렵에는 승지자리란 것도 있었습니다. 승지자리는 순조 때 청백리로 백성들이 우러러보던 전 승지 이시원이 짰던 자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시원은 승지를 그만 둔 뒤 잠시 강화도에 살았는데 이때 그가 돗자리를 짜 그것을 팔아 생계를 꾸렸기에 승지를 지냈던 사람이 짠 것이라 하여 승지자리라는 이름이 나왔지요.

 

원래 이시원(李是遠, 1790~1866)은 스물여섯 살 되던 순조 15년에 과거에 급제한 뒤 사간원 정6품 관직인 정언, 개성부 유수, 함경도 관찰사, 이조판서, 홍문관 제학, 예문과 제학과 동부승지를 지냈고 죽은 뒤엔 충정이란 시호를 받고 영의정으로 까지 추증될 정도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여러 벼슬을 지냈는데 얼마나 청렴했던지 벼슬자리를 그만 둔 말년에는 돗자리를 짜야만 생계를 이을 수가 있었다고 하지요.


 

높은 벼슬을 지낸 양반, 그것도 지방관 자리까지 지낸 사람이었으니 웬만하면 몇 살림 장만해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을 텐데도 돗자릴 짜야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니 그가 얼마나 청렴한 사람이었는지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돗자리를 짜는 그에게 주위 사람들이 이제 자리 짜는 일은 그만 두셔야 합니다.” 했더니 그는 늙었어도 자리는 짜야지. 이것도 안 하면 난 뭘 하나?” 하면서 껄껄 웃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