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시원(李是遠, 1790~1866)은 스물여섯 살 되던 순조 15년에 과거에 급제한 뒤 사간원 정6품 관직인 정언, 개성부 유수, 함경도 관찰사, 이조판서, 홍문관 제학, 예문과 제학과 동부승지를 지냈고 죽은 뒤엔 ‘충정’이란 시호를 받고 영의정으로 까지 추증될 정도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여러 벼슬을 지냈는데 얼마나 청렴했던지 벼슬자리를 그만 둔 말년에는 돗자리를 짜야만 생계를 이을 수가 있었다고 하지요.
높은 벼슬을 지낸 양반, 그것도 지방관 자리까지 지낸 사람이었으니 웬만하면 몇 살림 장만해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을 텐데도 돗자릴 짜야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니 그가 얼마나 청렴한 사람이었는지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돗자리를 짜는 그에게 주위 사람들이 “이제 자리 짜는 일은 그만 두셔야 합니다.” 했더니 그는 “늙었어도 자리는 짜야지. 이것도 안 하면 난 뭘 하나?” 하면서 껄껄 웃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