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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판소리, 이면에 맞는 소리와 연기가 성공요인

[국악속풀이 33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현재 국악속풀이는 김수연이 이끄는 <김세종제 춘향가보존회> 발표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존회원들의 순서가 진행 중에 찬조 출연한 신영희 명창의 춘향가 중 박석치 대목이 이어졌다. 이 대목은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서 남원에 내려오던 중, 입구의 박석고개에 올라 좌우를 내려다보며 지난날 춘향과의 만남을 회상하는 대목으로 사설이 시()적이다. “박석치 올라서서 좌우 산천을 둘러보니 산도 옛 보든 산이요, 물도 옛 보든 녹수로구나. <중략> 광한루야 잘 있으며 오작교도 무사트냐?”

 

신영희 명창은 근세 한국을 대표하던 김소희 명창의 수제자로 국가문화재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그는 판소리 북을 들고 대중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판소리를 널리 알리고 대중화 하는데, 일조를 한 명창으로 유명하다는 점, 그는 극장 무대가 크든, 작든 간에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통성으로 부르는 명창으로 또한 유명하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김수연의 강습생들이 부른 옥중(獄中), 쑥대머리 대목은 임방울(1905~1961)에 의해 유명해졌다는 점, 김수연의 큰 제자들이 남도민요로 끝을 맺었으나, 객석의 요구로 김수연의 흥타령이 이어지면서 서울 도심의 작은 공간은 이내 초가을 고향땅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김세종 춘향가를 지켜가는 김수연과 그의 보존회가 이번 발표회에서 던져준 메시지는 판소리의 아름다움을 확인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보존의 필요성이었다.


 

이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벌써부터 있어 왔고, 3년 전에는 <한국전통음악학회>와 동 보존회가 공동으로 김세종제 춘향가의 미적(美的)접근이라는 제하의 학술모임을 서울 삼성동 소재 <중요문화재전수회관>에서 가진 바도 있다. 학술모임에서 국문학 전공이나 국악학 전공 교수들, 관련 분야의 학자들은 김세종의 생애와 예술세계, 김세종제 춘향가의 위상, 전숭자들의 활동상황, 그리고 그 음악적 특징 등에 관한 논의였다.

 

당시에 논의되었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세종제 춘향가는 장자백과 김찬업을 거쳐 정재근, 정응민에게 이어졌고, 정응민은 보성에서 김연수, 박춘성, 김명환, 정권진, 조상현, 성우향, 성창순 등에게 전승시켜 더욱 확산되었는데, 이름만 들어도 짐작이 될만큼 한국 판소리계에 내로라하는 명창들이 이 소리제를 전수하고 확산시켜 왔다는 사실이다.

 

둘째, 동편소리는 통성이나 대마디 대장단에 의지한 소리제인데, 이 말은 극()중의 이야기가 대사로 진행되는 아니리나 몸동작으로 표현되는 발림보다는 주로 목에서 내는 소리자체를 근본으로 삼는 소리제이고 따라서 창법은 기교보다는 통목을 쓰는 점이 특징인 소리제를 말한다.

 

셋째, <김세종제 춘향가>는 사설을 보완하고 악조를 변화시켜 그 이전의 춘향가와는 달리, 양반적 취향이 상당부분 가미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소리의 향수층이 초창기에는 대부분 일반 서민들이었으나, 소위 지식인층, 양반층까지 확대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그들의 취향에 적합하도록 사설의 내용이 우아해 졌고 또한 섬세해 졌다는 점을 의미한다.

 

넷째는 음악적 내용에 있어서도 시를 짓고 읊는 형태의 시창(詩唱)이 노래 속에 삽입되고, 또한 슬픈 계면성음이 주를 이루는 소리에서 우아하고 웅장한 우조(羽調)음악의 삽입이 강하게 포함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 표현에 있어서도 지나친 감정의 표출은 자제하고 절제하는 미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된 점들을 참고해 본다고 해도 김세종제 춘향가는 전통시대의 판소리 중 가장 완강하면서도 고품격의 미의식을 담고 있다는 내용들을 진지하게 발표하고 논의하였던 것이다.


 

특히 판소리 연구가 이보형은 김세종제 춘향가는 옛날 명창들의 더늠이 고루 담겨 있고, (調)의 성음이 분명하며 부침새와 시김새가 교묘하고, 사설도 잘 다듬어져 있는 소리제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정노식(鄭魯湜)이 쓴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서는 김세종은 당시 판소리의 대가였던 송우룡, 박만순 등과 함께 동편에 속한 대명창으로 신재효 문하에서 지침을 받아 문견이 고상하고, 문식(文識)이 넉넉하며 창극에 대한 이론과 비평이 당세 독보적인 존재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박만순의 소리를 김세종만이 비평하였고, 박만순은 그 지적을 받아드렸다." 고 적고 있다.

 

또한 김세종은 창극조(唱劇調)는 물론, 창을 주체로 하여 그 짜임새와 말씨를 놓는 것과 창의 억양반복이나 고저장단에 규율을 맞게 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창과 가사의 의미가 맞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즉 이면(裏面)을 강조해 온 명창으로도 유명하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바로 음화(音畵)가 되겠다. 음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다.

 

가령, 높은 달이나 만학천봉과 같은 높은 대상은 고음(高音)으로 불러야 하고, 평평하거나 낮은 대상은 저음으로 불러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원근의 표현도 구분의 변화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가사의 의미가 나로부터 가까이 존재할 경우에는 짧게 불러야 하고, 멀리 있을 때에는 길게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춘향이는 여기에 앉고, 도련님은 저~기 앉아서라는 가사에서 여기와 저~기의 구분이 짧고 길게 표현되어야 하고, 천리(千里)라도 따라가고, 만리(萬里)라도 따라간다는 사설에서 천리는 짧게, 그리고 만~리는 상대적으로 길게 불러야 가사와 소리가 맞게 표현된다는 뜻이다.


김세종은 이와 함께 형용동작도 창극인만큼 극에 대한 의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면서 사설에 맞는 적절한 행위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울음을 울 때에도 실제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엎드려 울던지, 방성통곡으로 울던지, 그때그때의 경우를 따라 여실히 우는 동작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적절한 연기를 생략하고 아무 동작도 없이 그저 통곡만 한다면 소리와 극이 각각 분리가 되어 격을 잃게 되어 청중이 하등의 동정과 감격을 받아드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 생각한다. 청중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소리야말로 창극조의 정신을 잃게 되는 것이기에 소리만을 치중할 것이 아니라, 사설에 맞는 이면을 행동으로 적절히 보여야 하는 발림 또한 중요하다고 주장해 온 것이다. 판소리의 구성요소인 창과 아니리, 그리고 발림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세종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중요한 음악적 요소라 할 것이다.

 

이렇듯 이면(裏面)따라 소리를 해야 하고, 적절한 연기를 강조해 온 김세종의 춘향가를 공부하고 보존해 가고 있는 단체가 바로 <김세종제 춘향가보존회>이다. 이 조직은 성우향의 뒤를 이어 현재는 김수연이 이끌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