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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한국 도교의 칠성신앙, 초제 그리고 초례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6)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한국에서 도교가 활성화되고 초제(醮祭)를 전문으로 맡아보던 재초도감(齋醮都監)이 생겨났는데 이는 북송(北宋, 9601126) 휘종(재위 1100~1125) 대관 4(1110)인 예종(재위 1105-1122) 5년에 도사 2명이 고려로 직접 와서 복원궁(福源宮)을 세운 것이 시초이다. 복원궁은 국가가 마련한 도관으로서 별에 대한 제를 올리는 신앙처였다.

 

이에 앞서, 고려 현종, 문종, 선종, 숙종 때에는 궁중 안의 넓은 격구장이나 회경전(會慶殿)에서도 초제(醮祭)를 올렸는데 그 대상은 천지만물이 나고 이루어진 근원 또는 우주의 본체를 이르는 태일(太一)이었다. 뿐만 아니라 초제를 고려 정종은 남쪽 교외에서, 예종은 남단에서, 의종은 내전(內殿)에서도 올렸는데 이때는 노인성(老人星)이 제사 대상이었다.


 

특히 고려 예종 즉위 2년에는 연경궁(延慶宮, 개성 송악산 밑에 있던 고려 시대의 궁궐) 후원에 있는 옥청정(玉淸亭)에 도교의 최고신인 원시천존상(元始天尊像)을 모시고 달마다 초제(醮祭)를 지냈고 청연각(淸燕閣)에서 노자 도덕경을 강론토록 하였다. 초제는 조선으로 이어졌다. 소격서(昭格署)에 도사가 배속되었고 그에 의해 초제가 집행되었던 것이다. 그 형식은 고려시대와 다름없이 병환이나 재난을 없애거나 미리 막아내고 국가 안태를 기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조선시대의 궁궐 또한 도교의 영향 하에 건립되었다. 그 예가 북두칠성이 있는 자미원과 칠성을 호위하는 28(宿) 별자리를 본 따 지은 것이 경복궁과 창덕궁이다(이상해, 한국 미의 재발견궁궐유교건축12 2004). 창덕궁의 인정전 실내도 경복궁 근정전과 같은 형상으로써 네 개의 기둥을 세워 지었다. 그리고 여기에 자미천을 묘사하는 일곱 자씩 쓰인 글귀를 넣었다. 소요정 앞의 어정(御井)은 북두칠성 모양을 나타내는 을()자 모양으로 물길을 파기도 하였다. 자미원을 태을천(太乙天)이라고도 말한다.

 

도교 별신앙에서 대표성을 띠는 것이 칠성(七星)신에 대한 믿음이다. 칠성은 별자리 천추(天樞), 천선(天璇), 천기(天璣), 천권(天權), 옥형(玉衡), 개양(開陽), 요광(搖光)으로 구성되고 있는데, 앞쪽 네 개의 별은 괴(), 뒤쪽 세 개의 별은 표()라 하는데 이 모두를 합하여 두()라 칭한다. 그런데 이러한 칠성은 북두(北斗)와 남두(南斗)로 나뉘어져서 북두는 양()으로써 죽음을 관장하고 남두는 음()으로써 생명을 다스리는 사명신(司命神)을 구분되기도 한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칠성신앙에서 섬기는 숫자는 7이다. ()의 신앙을 도가(道家)의 대표적 경문 옥추경(玉樞經)을 통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 일곱 개 성군(星君)과 일곱 개 여래(如來)를 뜻하는 칠성여래(七星如來)와 칠원성군(七元星君)이 속해 있다. 이들은 자손에게 만 가지 덕을 주는 천추성(天樞星) 탐랑성군(貪狼星君) 운의통증여래(雲意通證如來), 장애와 재난을 없애주는 천선성(天璇星) 거문성군(巨文星君) 광음자재여래(光音自在如來), 업장을 소멸해 주는 천기성(天機星) 록존성군(祿存星君) 금색성취여래(金色成就如來), 소원을 이루어 주는 천권성(天權星) 문곡성군(文曲星君) 최승길상여래(最勝吉祥如來), 백가지 장애를 없애주는 왕형성(王衡星) 염정성군(廉貞星君) 광달지변여래(光達地邊女來), 복덕을 고루 갖추게 해 주는 개양성(開陽星) 무용성군(武曜星君) 법해유희여래(法海遊戱如來), 수명을 오래토록 연장해 주는 요광성(搖光星) 파군성군(破軍星君) 약사류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로 구분된다.

 

그리고 이들은 음양(陰陽), 오행(五行), 간지(干支), 팔괘(八卦) 따위로 인간의 명복(冥福)을 비롯하여 자손점지, 수명장수 등 길(), (), (), ()과 관련된 것은 물론 기우(祈雨)를 관장하는 신으로 구분되어 있다.

 

도교의 별신앙이 일반 민가에 전해진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면서 칠성님께 인사드리는 초례(醮禮)일 것이다. 혼례 진행은 의혼(議婚)을 위시하여 사성(四星),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 등으로 진행하는데, 초례는 신랑 신부가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친영의 한 과정이다. 여기서 기러기를 드리는 전안례(奠雁禮) 후에 이어지는 교배례(交拜禮)와 합근례를 합쳐서진 것이 초례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초례가 도교로부터 영향을 받아 민간으로 이어진 것인지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구의 811. 3m 높이 환성산에 속해 있는 봉우리로써 높이 637m 의 초례봉[醮禮山] 설화를 통해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국토지리정보원, 한국지명유래집경상편 지명(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11). 오늘날 민간에 전하는 초례(醮禮)라는 명칭은 고려 태조가 동수(桐藪)에서 견훤(甄萱)을 치고, 이 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했다고 하여 붙여진 졌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왕건이 이 지역의 토호세력의 딸과 결혼을 올린 후 초례산 정상에 올라 하룻밤을 치룬 것이라고도 한다. 초례산 정상에는 사람 두 명이 누울 만한 평탄한 화강암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초례에 관련된 설화를 뒷받침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한편, 민간으로 전해진 도교 형식의 초례는 그 형식과 상차림은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음양 화합을 뜻하는 청색과 홍색의 실을 감은 촛대를 양쪽으로 세우고 솔가지와 대나무, 수탉, 암탉, , 대추, 붉은 팥, 검은 콩 등을 사용한다. 초례청 뒤쪽에는 진행을 맡는 창홀(唱笏)이 서서 초례 식순이 적힌 홀기(笏記)를 들고 식을 진행하는데 이 때에 신랑은 양을 뜻하는 동쪽 신부는 음을 뜻한 서쪽에 섬으로써 음양의 이치를 받아들이고 예를 행하게 된다.

 

위와 같이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도교 칠성신앙은 전래된 무교의 칠성신앙과 공존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대립하고 융합하여 왔다. 그러나 서두에서 논한바와 같이 한국 칠성신앙은 단군신앙으로 계승되어진 한국 고유의 것으로써 무교의 삼신신앙의 영향 하에 성립되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그리고 중국 도교로 유입되어진 칠성신앙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고서 한국 문화 속에 자리매김 되어져 역할 하여 왔다. 따라서 무교와 도교의 칠성신앙은 별 개의 영역 속에서 각각 색다른 신앙체계를 구축하여 그 맥을 유지하여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