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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 먼 국경의 섬 “가거도”, 18년 만에 다시 가다

[이름다운 우리땅 구석구석]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섬학교에서 이번 가거도 여행의 제목을 <일생에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섬, 국경의 섬>이라고 한 것에 끌렸는지, 섬학교 교장 강제윤 시인의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가거도 여행을 신청하여 모두 39명이 버스를 타고 갑니다. 39명 중 가거도를 가 본 사람은 저와 교장 선생님밖에 없습니다. 제 주위에도 가거도 가 본 사람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가거도가 어디 있는 섬이냐?’고 묻는 사람도 많더군요. 그만큼 가거도는 우리에게는 머나 먼 섬이었지요. 오죽 했으면 가거도가 자기도 사람이 거할 만한 섬, 가거도(可居島)”라고 목청을 높였겠습니까?

 

가거도 가는 배가 아침 810분에 목포항을 출발하니, 섬학교 학생들을 태운 버스는 서울에서 밤 12시에 출발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잠은 버스 안에서 자야했고, 참으로 피곤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를 배를 타고 가거도 가는 동안이 문제였습니다. 매가 출발하여 처음에는 호수 같이 잔잔하던 바다가 비금도, 도초도 벗어나니 조금씩 파도 높이를 더합니다. 그리고 흑산도를 지나 서남쪽으로 선수를 틀어 일로 가거도를 향해 달릴 때에는 파도가 흰 이빨을 드러내고 배를 흔들어 대 롤러코스트를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파도 높이가 3m에 이른다는 기상예보가 틀리지를 않았습니다.

 

당연히 멀미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겠지요. ! 그런데! 평소 멀미와는 인연이 없다고 자부해온 제가 그만 그 멀미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멀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 교만이었으니, 하나님께서 이 놈! 맛 좀 봐라하신 모양입니다. 덕분에 저는 울렁거리는 파도와 함께 울렁거리는 제 속을 달래려고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아침에 먹은 음식물 내용을 몇 번씩이나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속을 다 비우고 더디 가는 시간을 저주하는 속에서도 가거도에 도착했습니다. 첫날 일정은 점심 먹고 곧장 독실산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물 말은 밥을 몇 수저 뜨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온 가거도인데 그런 상태에서고 따라나서야 했습니다.


 

독실산은 해발 639m의 산입니다. 같은 639m 산이라도 육지의 산과 다릅니다. 육지의 산은 어느 정도 높이를 먹고 올라가지만, 독실산은 639m를 고스란히 올라야 합니다. 더구나 넓이 9.18평방킬로미터의 섬이 639m나 솟아올랐으니 얼마나 가파르겠습니까? 다행히 섬이 물고기 모양 길게 되어 있어, 일단 처음에만 고생하면서 주능선 올라가면 그 다음부터는 그리 어려운 산행은 아닙니다. 저는 속을 다 비우니 몸이 가벼워져서인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산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산행을 할수록 멀미 기운이 제가 흘리는 땀과 함께 빠져나가 되레 몸이 개운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출발하여 위를 보니 독실산 능선이 보이지 않습니다. 구름에 가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구름 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파른 산행에 힘들어하면서도 가거도가 펼쳐주는 절경에 탄성을 지르며 나아갔는데,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는 그저 미망 속을 헤매듯 구름 안개를 헤치며 걸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섰을 때에는 옆에 붙어 있는 사진으로 저 구름 아래의 경치를 상상만 하였지요.

 

올라가봐야 안개 때문에 경치를 즐길 수가 없으니 정상까지 가지 않기로 합니다. 보통 여행을 가면 저녁 후에 마시는 행사(^^)가 있게 마련인데, 저는 일찍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다음날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였지요.

 

보통 서해안 섬에서는 해돋이를 보기 어렵다는데, 이곳은 한국의 최서남단 섬이지 않습니까? 해돋이 시간 아침 634분에 맞춰 일어나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바닷가로 나갔지요. 수평선을 얇은 구름이 살짝 덮고 있긴 하지만 해돋이 보는 데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열심히 해돋이 사진을 찍는데, 오른쪽에서부터 배가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배가 떠오른 태양 밑으로 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망원렌즈로 이를 사진에 담기도 했지요.


 


오늘은 항리마을 섬등반도까지 걸어갔다 오는 일정입니다. 아침을 먹고 대리 마을 뒷편 삿갓재까지 헉헉대고 올라가 독실산 옆구리를 타고 바다를 바라보며 항리마을까지 걸었습니다. 가거도에는 대리, 항리, 대풍리 이렇게 3개 마을이 있습니다. 항리마을은 섬등반도가 목처럼 길게 뻗어나와 있다고 항리(項里)입니다. 보통 이렇게 뻗어나온 곳을 곶이라 하는데, 가거도에서는 통 크게 섬등반도라고 부르네요.

 

사람들은 섬등반도 전망대에 서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맞이하며 즐거워합니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나고 자유시간이라는데 저는 이 좋은 곳을 곧바로 떠날 수 없어 계단을 따라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카누를 타는 사람이 있고 작살을 갖고 물에 들어가 물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네요. 허가는 받았겠지요? 저도 18년 전에 가거도 왔을 때에 어촌계 허락을 받고 산소통 메고 물속에 들어가 바닷속 유람을 하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저 사람들을 보니 저도 다시 저 잠수복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들고픈 충동이 입니다.


 



이곳 다희네 민박집에서 점심을 사먹으면서 주인 내외와 얘기를 나누니, 부인이 목포 출신이네요. 가거도 출신 남자가 목포로 나가 육지 여자를 납치해왔나요. ^^ 제가 목포에서 근무했고, 18년 전에도 가거도 왔었다고 하니까 더 반갑게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못 올라간 독실산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두 발로 걸어서 올라간 것은 아니고요, 민박집 트럭을 타고 올라갔지요. 독실산 정상에는 해경 기지가 있으니까, 거기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는 도로가 있는 것입니다. 18년 전에도 지프차 타고 올랐는데, 제 기억으로 그 때는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올랐던 것 같습니다.

 

해경기지 못 미쳐 트럭에서 내려 해경기지로 접근하니, 의경이 신고서에 이름을 쓰고 올라가라 합니다. 18년 전에는 민간인에게 독실산 정상을 개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젠 국민이 주인인 것을 아는 세상이 된 것인가요? ^^

 

독실산 정상에서는 하태도, 상태도, 그 뒤로 그보다 덩치가 큰 흑산도, 흑산도 왼쪽으로 홍도까지도 보입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제주도도 보인다는데, 제주도 방향으로는 나무가 가려 볼 수가 없네요. 우린 걸어서 독실산을 내려옵니다. 어제 우리가 걷지 못한 구간은 육지와는 다른 섬의 숲이 빽빽하게 차 있어 햇빛이 제대로 뚫고 들어오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오던 길을 다시 기어 올라갔습니다. 중간에 삿갓재로 내려갔다가 회룡산으로 오르기 위함이었지요. 회룡산으로 오르는 까닭은? 해넘이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대리마을에서는 회룡산에 가려 바다로 떨어지는 해넘이를 볼 수 없거든요. 해넘이 시간에 늦을까봐 서둘렀는데, 도착하니 오히려 시간이 남습니다.

 

천천히 수평선으로 접근하던 해는 물냄새를 맡더니만 급하게 수평선으로 다이빙합니다. 하늘과 바다가 모두 해 하나로 붉게 물드는 것을 넋을 놓고 바라봅니다. 아침 해돋이 때에는 그래도 수평선에 얇게 구름이 깔렸었는데, 해넘이에 바다로 떨어지는 해는 그야말로 깨끗하게 바다로 잠깁니다. 매번 수평선에 구름이 어느 정도 낀 모습만 보다가 그렇게 깨끗하게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것은 처음 봅니다. 그리고 하루에 바다에서 해돋이 해넘이를 다 보기도 처음이구요. 이것만으로도 이번에 가거도 온 것 본전은 다 뽑았습니다.

 

마지막 날은 1시에 가거도를 나가는 배를 타야 해서 오전에 유람선을 타고 가거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가거도는 벼랑으로 둘러친 요새 같은 섬입니다. 작은 섬에 639m의 산이 솟아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가거도에 유일한 가거도항의 평지도 갯벌을 매립하여 확보된 땅입니다. 그러니 신안군의 다른 섬들이 어업보다는 농업을 더 많이 하지만, 가거도에서는 농사지을 땅이 없어 오로지 어업에 의존하여 살아온 것이지요. 유람선은 백년등대에도 잠시 우리를 내려줍니다. 1907년에 만들어진 등대이니 그야말로 딱 100년이 된 등대네요.



 




23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다시 목포 가는 쾌속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올 때와는 달리 바다는 잔잔합니다. 다들 가거도가 일생에 한 번은 꼭 왔어야 할 섬이 맞다고 하면서, 다음에 다시 한 번 오겠다고 합니다. 후후! 그 다음이라는 것이 언제가 될까요? 저도 18년 전에 가거도 왔다가 다시 오마하며 떠나왔지만 다시 가는데 18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래도 가거도에 다시 온다는 인사는 해야겠지요? “가거도야! 내 죽기 전에 다시 오마!” 멀어지는 가거도를 눈 속에 계속 담고 싶지만, 쾌속선은 속도를 올려 부리나케 가거도를 빠져나갑니다. 국경의 섬 가거도! 이제 가거도는 내 마음 속의 영원한 섬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