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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통일신라 낭혜화상의 업적이 적혀있는 “낭혜화상탑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7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에 가면 국보 제8낭혜화상탑비(郎慧和尙塔碑)”가 있습니다. 이는 성주사터에 남아 있는 남북국시대(통일신라)의 승려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탑비입니다. 빗돌 높이 263, 너비 155, 두께 43, 전체 높이 4.55m에 달하는 거대한 모습에 듬직하고 아름다운 조각을 새겨 넣은 당시를 대표할 석비지요. 절터 서북쪽에 세워진 이 비는 거북 모습의 받침돌 위에 몸체를 세우고 그 위로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받침돌이 심하게 부서진 채 흙에 묻혀 있던 것을 1974년에 해체보수하였습니다.


 

얼굴의 일부분이 깨져 있는 거북은 머리 위쪽에 둥근 뿔이 나 있고, 뒤로 째진 눈에는 눈썹이 휘말려 있으며, 입은 마치 불을 내뿜으려는 기세로 재미납니다. 등에는 선명한 육각무늬를 새겼고, 가운데는 굵직한 구름무늬가 있지요. 맨 위에 올린 머릿돌은 밑면에 연꽃을 두르고, 그 위로 구름과 용이 서로 뒤엉킨 장면을 입체적으로 새겼는데, 힘찬 용틀임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앞면에는 받침돌의 거북머리와 같은 방향으로 용머리가 툭 불거져 나와 있어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비문에는 낭혜화상의 업적이 5천여 자에 달하는 장문으로 자세히 적혀 있는데, 진골이던 낭혜화상의 가문이 아버지 대에 이르러 6두품으로 낮아지는 대목도 나타나 있어 당시 신라골품제도의 연구자료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지요. 최치원이 글을 짓고 그의 사촌인 최인곤이 글씨를 썼으며, 비를 세운 시기는 적혀 있지 않으나, 낭혜화상이 입적한 2년 뒤에 부도(浮屠)를 쌓았다는 비문으로 보아 이 때 비문이 작성되고 비가 건립되었다고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