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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청계천에 있는 ‘넓게 통하는 다리’ 광통교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7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광화문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종각 못 미쳐 을지로 방향으로 가다가 청계로와 만나는 길목의 청계천 위에는 광통교(廣通橋)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는 조선시대 광통방에 자리잡고 있어 광통교 또는 광교라고 불렀는데 넓게 통하는 다리라는 뜻에 맞게 조선시대에 가장 붐볐던 다리였지요. 을지로 가까이 있었던 소광통교와 구분하여 대광통교로도 불렀으며, 일명 큰광교큰광통교로도 불렀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북광통교(北廣通橋), 승정원일기에는 광충교(廣沖橋)로도 쓰여 있습니다.


 

조선시대 도성 안에서 가장 큰 다리로 길이 약 12m, 15m로 길이보다 폭이 넓었지요. 이 광통교는 태조가 조선 초 도성을 건설할 때 흙으로 놓았는데, 태종 10(1410) 큰 비로 다리가 떠내려가자 태조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貞陵) 옛 터의 병풍석 등 석물을 가져다 돌다리로 만들었습니다. 태종은 자신이 미워했던 신덕왕후 무덤 보호석들을 그 광통교의 교각으로 씀으로써 만백성들이 밟고 지나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또 알아둬야 할 것은 광통교 하류쪽 교각에 오목새김으로 새겨진 개천 준천 사실입니다. 일제강점기 초 이름이 바뀐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인데 인공으로 물길을 만들었던 데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개천은 차차 흙과 모래는 물론 오물까지 쌓이고 물이 넘치기까지 하자 영조 36(1760) 약 두 달에 걸쳐 강바닥을 파내는 대대적인 준천(濬川) 사업을 벌였습니다. 이때 준천 사실을 경진지평(庚辰地平)’이라는 네 글자에 새겨 수표석(水標石)을 새겨두었지요. 순조 33(1833) 계사경준(癸巳更濬)’, 고종 6(1869)기사대준(己巳大濬)’도 있습니다.